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동계(東界) 출신으로 보인다. 1216년(고종 3) 8월부터 1219년(고종 6) 정월까지 거란유종(契丹遺種: 패망한 大遼收國의 거란족 유민)이 고려를 침략하였다. 1218년(고종 5) 9월 조충(趙冲)이 지휘하는 고려 삼군(三軍)은 거듭 거란유종을 격파하고 강동성(江東城: 평양특별시 강동군 강동)에 고립시켰다. 같은 해 12월에 몽고는 동진국(東眞國)과 함께 3만 명의 병력을 보내 고려군과 연합하여 거란유종을 물리치겠다고 선포했다. 이 시점부터 1219년(고종 6) 2월까지 고려가 몽고와 연합하여 거란유종을 최종적으로 물리치는 강동성전투(江東城戰鬪)가 벌어졌다. 이때 조중상(趙仲祥)은 통사(通事: 통역관)의 직책으로 모두 2회에 걸쳐 여·몽 사이에 통역을 담당하였다.
첫 번째는 1218년(고종 5) 12월에 몽고군이 강동성 공략에 실패한 후 몽고군의 원수(元帥) 합진(哈眞)이 조중상과 덕주(德州: 평안남도 덕천시)의 진사(進士) 임경화(任慶和)를 시켜 고려의 원수부(元帥府)로 외교 문서를 보냈을 때였다. 두 번째는 1219년(고종 6) 2월, 고려군의 조군(助軍)을 요청한 몽고에 요구에 응하여 김취려(金就礪)가 몽고 군영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때 조중상은 여·몽 사이에서 형제맹약(兄弟盟約) 체결을 위한 국가 중대사에 참여하여 통역을 맡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