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남양주 흥국사 소조 석조여래삼존 좌상 및 16나한상 일괄은 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에 있는 조선시대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16나한상 일괄이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보살상들이 흥국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고, 권속상들은 남양주시립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발원문과 바닥면 묵서 기록을 통해 1650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의 조성시기는 15~16세기경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나한상 가운데 일괄로 조성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2011년 소조석가삼존불좌상만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모든 존상들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에 있는 조선시대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16나한상 일괄.
개설
내용
한편 제석천상과 제10반탁가존자상(第十半託迦尊者像)의 바닥면에서도 중수와 관련된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명을 통해 1650년에 중수되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데 당시 참여했던 서희(瑞熙), 상민(尙敏), 조능(祖能), 성일(性日) 등의 화원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수화원 서희는 17세기에 제작한 작품이 거의 없다. 그러나 상민은 혜희의 차화승으로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55)과 갑사 보장전 목조불좌상을 제작하였으며 조능은 우두머리 조각승으로서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55, 원 봉안처 전주 봉서사),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57) 등을 조성한 화원이다.
즉 이들 영산전 불상들은 1650년에 중수된 상으로, 원 봉안처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 안심사 약사암이며 1892년 왕실의 상궁들에 의해 현재의 봉안 사찰인 흥국사로 이안해 왔음이 확인된다. 흥국사는 1568년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원당을 지어 편액을 하사받았던 사찰로 이후 정조, 고종 등 꾸준하게 왕실의 후원을 입어 중수와 중건이 있었으며 19세기에 가장 많은 불사가 있었다.
특징
석가의 좌우측 보살상들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앉아 있는데 좌협시는 왼손을 가슴 부위에, 오른손을 배 부분에 두었고 우협시는 그 반대의 손 모습을 취하였다. 신체비례, 얼굴 표현 등은 본존불상과 유사하다. 정수리에 상투형 머리를 올렸으며 어깨 위의 머리카락은 생략되었다. 신체에는 화형 귀걸이, 수식이 세 줄 드리워진 목걸이, 간결한 팔찌 등을 착용하였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걸친 변형 통견식이나 옷주름 세부 표현에서는 역시 본존불상과 같다. 길쭉한 신체 비례와 낮은 무릎, 도드라지게 표현된 무릎 위 옷주름 등은 1458년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1993년 지정), 1482년 천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되고 보살상의 상투표현과 어깨 위 머리카락의 생략 등은 16세기 보살상들의 특징적인 요소로 이 삼존상은 15~16세기에 조성된 조선 전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16나한상은 현재 표면을 짙게 채색한 상태로 1892년 흥국사로 이운하면서 다시 채색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한상들은 상반신이 길고 무릎이 낮은 길쭉한 비례에 마른 모습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한 얼굴은 표정이 다양하여 실재적인 특징을 보인다. 나한상들은 사자, 호랑이 등의 동물과 함께 앉아 있거나 염주, 불자, 파초, 경책을 든 모습, 합장한 모습 등 독특하고 다채로운 자세와 지물을 표현하였다. 의자에 앉은 제석천상과 두루마리를 든 사자상, 칼을 쥔 인왕상 등은 규격이 작고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나한상은 작은 얼굴과 길쭉한 신체비례에서 삼존상과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 불상들과 비교되며 턱이 좁은 갸름한 얼굴은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1501년. 보물, 1965년 지정)과 닮았다. 나한상의 제작시기는 조선 전기인 15~1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문화재-인천·경기』(문화재청·(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2)
- 「조선 전기 16세기의 불교조각 연구」(어준일, 『불교미술사학』17, 불교미술사학회, 2013)
- 「남양주 흥국사의 조선전기 목조16나한상」(정은우, 『동악미술사학』10, 동악미술사학회, 2009)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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