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작중 주인공 박주철이 아내 혜숙, 오촌 당숙의 아들 박주언과 함께 고향 ‘절골’로 귀향하면서 시작된다. 표면상 이들의 목적은 주철의 동생 박주만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과 친족이 모여드는 고향은 혈연적 공동체가 화합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비극적인 가족사와 한(恨)이 집약된 장소다. 폐인처럼 살다가 죽은 남동생 주만,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여동생 주심, 윤길을 잡으려는 경찰 정보원 주언 등의 과거가 떠오르는 것이다.
가족사의 비극과 더불어 이 소설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갈등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인 아버지 박주철과 좌익 경향의 대학생 박윤길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다. 계급주의 사상을 신봉하는 윤길은 아버지를 기회주의적이고 보수반동적인 인물로 낙인찍는다. 그의 ‘아버지 부정’은 친일파나 지주의 아들들이 각자의 아버지들을 서로 대신 죽여주기 위해 조직했다는 ‘살부계(殺父契)’를 통해 표출된다. 주철 역시 그런 아들에게 때때로 ‘살의’를 느끼지만 혈육의 정을 완전히 끊지는 못한다.
이와 같은 ‘아버지 죽이기’의 의식은 비단 주철과 윤길 부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아버지 죽이기’ 내지 ‘아버지 극복하기’는 비천한 개동이를 아버지로 둔 주언과 주철의 작은 할아버지 박호남의 의붓아들들인 쌍도, 쌍균 형제에게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물려 준 갈등과 한을 현재의 삶에서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윤길은 폐사(廢寺)에 은거하면서 도지(賭地) 문제를 놓고 불광 학교 재단과 싸우도록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지만, 주언에게 체포되고 만다. 이 작품은 윤길이 〈반미ㆍ민족해방투쟁위원회〉 사건으로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주철이 자신과 아들 사이의 “깊게 패인 골짜기”만큼이나 먼 거리를 느끼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80년대의 세대론적인 단절과 현실 정치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여순 반란 사건, 6ㆍ25전쟁 등 한국현대사의 주요한 이념 대립이 낳은 원한 관계가 주인공 박주철의 복잡한 친족사에 얽혀 있다. 한승원은 이러한 갈등을 ‘살부계’ 내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상징적인 장치의 삽입을 통해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아들 세대들은 ‘살부’ 의식을 혁명이자 과거와의 단절로 받아들인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인물은 윤길이다. 그는 아버지를 반동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선대에서 형성된 죄에 대해 원죄적인 수치감을 느낀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는 정치적ㆍ역사적ㆍ사회적 진보를 위해 제거하고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대상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주철과 윤길 부자의 갈등 관계를 작품 안에서 뚜렷하게 해소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이란, 화해를 통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형적인 주제로서 영원히 지속될 보편적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한승원은 ‘살부’라는 주제의식을『아버지를 위하여』(1995)에서 심화하여 되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