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의 장」은 절대적인 궁핍과 과대망상에 빠진 병적 인간들의 이야기다. 밥을 굶더라도 미국 유학은 꼭 해야 한다는 ‘나’(지상)의 가족, 생계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국가와 민족, 인류 사회를 위해 일하다 죽자는 ‘진성회’의 일원들, 창녀 광순에게 용돈을 타다 쓰는 무능력자 ‘나’ 모두 비정상적인 인물들인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주변인뿐만 아니라 경험자아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일인칭 화자 ‘나’의 냉소적 시선을 통해 제시된다. ‘나’는 자기 삶과 주변 관계들에서 아무런 ‘필연성’을 느끼지 못하며, 인간의 행동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극단적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가족이나 진성회가 추구하는 허황된 가치들은 자기기만에 불과할 뿐이다.
이 작품은 ‘나’의 가족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재봉틀을 빼앗기고, ‘나’가 이종사촌 선옥을 창녀 광순에게 맡기고 돌아오다 낯선 청년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처럼 절망적인 삶이 지속되는 결말을 통해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 손창섭 소설의 기본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절대적 궁핍과 존재의 무의미함은 손창섭의 창작 기반인 전쟁 체험 내지 전후 현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중 인물들이 겪는 절망의 원인을 당대의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시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미해결의 장」에서 전후 현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재현되기보다는 ‘나’라는 한 분열된 주체를 통해서만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극단적인 허무주의는 부정적인 현실을 은폐하는 당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작품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 사회적 출세, 국가 담론 등과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수동적으로나마 거부하는 유일한 존재다. 따라서 ‘나’의 허무주의적 의식 역시 그러한 현실 비판의 소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