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족』은 일본으로 건너간 독립투사의 아들 박도현이 “부친이 택한 수난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도현은 3ㆍ1운동으로 부친을 잃은 한상희를 만나면서 조선 독립을 위해 분투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행동은 대개 ‘넌센스’에 불과한 것으로서, 일본 경찰의 감시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이에 도현은 중압감을 느끼는 한편, 숭고한 대상인 상희를 향한 욕망 끝에 일본인 노리꼬를 강간하고 이를 고발하려는 하숙집 여주인까지 겁탈한 후 이를 민족적 복수심으로 정당화한다.
또한 도현은 아버지가 중대한 사명을 띠고 조선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흥분하여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다이너마이트를 제작하나 이 역시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한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의 마지막까지 일제에 대한 구체적인 저항을 실천하지 못한다. 결국 노리꼬가 자살한 이후, 도현은 뒷날을 기약하며 상희의 도움을 받아 만주로 밀항한다.
『낙서족』은 손창섭이 전후현실이라는 반복적 주제에서 벗어나 일제 강점기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집필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라는 특정한 과거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역사화하기보다는, 박도현이라는 한 인물이 ‘독립투사의 아들’로서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희화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작중 주인공 도현이 끊임없이 의식하는 조국, 자유, 행복, 투쟁 등의 관념은 현실적인 속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관념의 원천인 아버지가 초월적 기표라는 데 있다. 그는 작품에 실제로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모순적 현실의 극복을 담보하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따라서『낙서족』에서 도현의 민족적 저항의식은 허구적 관념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한편『낙서족』을 작가의 세대론적인 관점의 반영이나 민족 내지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보려는 해석들도 있다. 작품 내재적인 관점에서 박도현은 분명 우스꽝스러운 인물일 뿐이지만, 그의 희화화된 행동은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와 같은 관념이 지배 담론으로 존재하던 전후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