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딸」은 우울증을 앓던 ‘나’가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는 아내와 장인, 장모를 피해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과거에 어머니와 잠시 살았던 대장장이에게서 외할머니인 꾸실이 무당과 어머니 용왕례를 둘러싸고 벌어진 과거의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의 가계를 밝혀주는 기능을 한다. 즉 ‘나’는 의붓아버지 똘쇠가 신들이 산다는 가막섬에서 외할머니를 범해 어머니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똘쇠는 외할아버지이자 의붓아버지인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불’이라는 원시적 생명력에 매혹된 무당으로 ‘불’의 본능에 따라 뭇 남성들을 매혹하는 성적 존재다. 이렇게 ‘불’은 작중 인물들 대부분의 존재성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단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어머니 찾기가 개인적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과 관련된다면,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정체는 보다 역사적ㆍ민족적 의미를 내포한다. ‘나’의 아버지는 서낭당을 헐고 신사를 지으려는 친일파와 일본인들에게 저항하다 죽은 무당이기 때문이다. 작품 말미에서 ‘나’는 무당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고, 무당이 되어 부모의 떠도는 넋을 위로하겠다고 결심한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이 부모의 한(恨)을 더듬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심층적인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과정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비극적인 사회적ㆍ역사적 맥락에서 전개된다는 것이「불의 딸」의 특징이다. 이 소설은 그 배경인 남도 섬마을을 한 민족의 역사와 삶이 얽혀 있는 장소로 그리고 있다.
한승원은 샤머니즘이라는 전통 종교와 기독교라는 외래 종교의 대립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작가의 샤머니즘에 대한 애정과 민족 전통에의 정열이 이 작품을 이루는 주된 동력이 된다고 하겠으나, 그에 따라 이분법적 구도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유형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