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회(珠壺會)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판화로 입상한 최지원의 호 ‘주호(珠壺)’에서 따온 이름이다. 1939년 경련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최지원의 1주기를 맞아 1940년 평양의 작가들의 모여서 만든 단체이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5회에 걸친 주호회전에는 최영림⋅장리석⋅황유엽⋅변철환⋅홍건표⋅장기철⋅오노 타다아키(小野忠明, 1903∼1994) 등이 참여했다.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판화 「걸인과 꽃」을 출품하여 처음으로 입선한 주호 최지원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최지원의 1주기를 맞아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에는 최지원의 판화작업을 보고 그를 집으로 불러 직접 가르쳤던 오노 타다아키를 비롯해, 최지원을 통해 오노 타다아키의 집에 드나들며 판화를 배웠던 장리석, 최영림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최지원의 동문인 변철환과 당시 평양도청에 전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박수근, 그리고 홍건표, 장기표 등이 모여 그의 죽음을 기리는 전시회를 열었다.
제1회 주호회전은 최지원의 집에 남아있던 작품들을 모으고, 그를 기리는 동료 화가들의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판화가 다수를 차지했다. 제1회 주호전은 우리나라 근대기 활동한 작가들이 판화를 예술작품으로 인정했던 첫 판화 전시회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주호회는 이후 5년 동안 매년 한 번씩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나, 화풍상 뚜렷한 지향점을 가지고 시작한 단체는 아니었다. 이 시기 황유엽, 장리석, 변철환, 홍건표 등은 조선미술전람회에 등단하는데 역점을 두었던 때였기 때문에 주로 평양의 풍경이나 일상의 정물을 사생한 유화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으며, 박수근은 일하는 여인이나 가족을 모델로 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노 타다아키라를 통한 판화작업과 그 여파는 해방 이후 판화의 대중화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했던 최영림과 간헐적으로 참가했던 장리석, 박수근 정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주호회는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오노 타다아키라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주호회전의 결성 계기가 되었던 최지원과 해방 후 판화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던 최영림의 판화작업은 한국 근현대 판화의 태동으로 볼 수 있으며, 주호회전은 한국의 첫 창작판화전이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