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빈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조선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수장가.
이칭
  • 이칭우경(友鏡), 일우(一友)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운동 관련 옥고, 1938년 도산 안창호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3년(고종 30)
  • 출생지평안북도 영변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박경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오봉빈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오봉빈 전후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수장가.

생애

호는 우경(友鏡). 평안북도 영변에서 교육 사업을 하던 천도교 지도자인 오현단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친이 경영하던 영변의 사립 봉오학교를 거쳐 서울로 올라와 천도교 강습소를 다녔으며, 20세 되던 1913년에는 보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봉오학교 교사를 지냈다.

3·1운동과 관련해 상해로 건너갔다가 체포당해 복역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 동양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29년 봄, 오세창(吳世昌)의 권유로 광화문에서 조선미술관을 운영하며, 1929년 9월 ‘고금서화전람회(古今書畵展覽會)’, 1930년 ‘제1회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朝鮮古書畵珍藏品展覽會)’, 1940년 ‘십대가산수풍경화전(十大家山水風景畵展)’을 개최하는 등 서화보급에 힘썼으나,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았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신문, 잡지를 통해 문필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남선전기(南鮮電氣, 지금의 한전) 취제역 이사(현재의 대표이사에 해당)로 취임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활동사항

1919년 상해로 건너가 민족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를 만났다. 3·1운동 직후에 상해에서 서울로 돌아왔다가 독립운동 관련자로 체포되어 징역 6년,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고 첫 번째 옥고를 치렀다. 그 후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1927년 동양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로 돌아와 천도교 재단에서 일을 맡아보던 중 일우(一友)라는 호를 우경(友鏡)으로 고친 뒤 한동안 입신 생활을 했다.

1929년 불가 생활을 결심한 후 가사(家事)를 정리하러 서울로 올라왔다가 대선배이자 존경하는 오세창(吳世昌)의 권유로 조선미술관을 설립하여 1929년 9월 ‘고금서화전’(1929. 9. 10〜10. 30), 1930년 ‘제1회 조선고서화진장품전’, 1931년 3월 20일 ‘조선명화동경전’, 1932년 10월 1일 ‘제2회 고서화진장품전’을 개최하는 등 10여 년 동안 조선미술관을 경영하면서 서화문화 보급에 힘썼다.

1937년 도산 안창호의 항일 투쟁정신을 따르던 수양동지회의 중심인물로 일제 경찰에 검거당하여 2년 구형을 선고받았다가 상고심 종결 때에 무죄로 석방되었다. 수양동지회 사건이 일단락된 직후인 1940년 3월 21일 조선명가서화전, 1940년 5월 28일 조선미술관 창립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십대가산수화전(十大家山水風景畵展) 등을 개최하며 조선미술관의 확고한 의지와 민족미술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미술관을 폐관하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1945년 8·15 민족해방을 맞이하여 신문, 잡지에 정치평론, 시국론 등 문필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남선전기(南鮮電氣, 지금의 한전) 취제역 이사로 취임했다. 6·25 전쟁 중 피난을 못 가고 서울에 있다가 납북되었다.

참고문헌

  • -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 - 「1930년대 고서화전람회와 경성의 미술 시장-오봉빈의 조선미술관을 중심으로」(권행가, 『한국근현대미술사학 』, 2007)

  • - 「조선명보전람회와 조선명보전람회도록」(김상엽, 『미술사논단』25, 2007)

  • - 「한국 화랑의 역사에 관한 연구-1910∼1970년대를 중심으로」(심현정, 경희대학교 석사논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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