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리(任永里)라고도 한다. 성씨는 알 수 없으나 진평왕대 관등이 이찬(伊飡)이었으므로 진골(眞骨) 귀족으로 보인다.
629년(진평왕 51) 8월 신라는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 포천 반월산성)을 공격하여 고구려군 5천명을 죽이고 1천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 낭비성전투에 참전한 장군들은 이찬 임말리를 비롯하여 소판(蘇判, 迊湌) 대인(大因)·김서현(金舒玄), 파진찬(波珍飡) 용춘(龍春)·백룡(白龍), 중당당주(中幢幢主) 김유신(金庾信) 등이었다. 임말리를 비롯하여 고위 관등을 지닌 명망 있는 인물들이 장군으로서 참가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낭비성전투는 북방 전선에서의 중요한 전투였다. 임말리의 지휘통제하에 벌어진 이 전투에서 김서현·김유신 부자의 활약이 눈부셨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낭비성전투 이전 신라는 고구려의 북한산성(北漢山城) 공격(603), 우명산성(牛鳴山城) 공격(608) 등으로 수세에 몰려 수(隋)에 걸사표(乞師表)를 보내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신라가 낭비성전투에서 승리하여 낭비성을 점령함으로써 임진강 부근방어선을 확보하였다. 이로써 신라는 고구려의 위협을 극복하게 되어 이후 공방전을 유리하게 전개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