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내 ()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일리촌(一利村)의 지방세력가. 촌주.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일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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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일리촌(一利村)의 지방세력가. 촌주.
생애 및 활동사항

일리촌(一利村, 경상북도 성주군)의 유력자로서 어질고 지혜가 있었으며, 사람을 보는 혜안이 있었다.

402년(실성마립간 1) 눌지마립간의 두 동생 가운데 미사흔(未斯欣)은 왜국에 볼모로 가 있었고, 복호(卜好)는 412년 고구려에 볼모로 갔다. 눌지마립간은 417년 즉위하자 두 동생을 송환하기 위해 변사(辯士)를 구하였다. 그 적임자로서 일리촌 간(干) 구리내를 비롯하여 수주촌(水酒村) 간 벌보말(伐寶末)과 이이촌(利伊村) 간 파로(波老)를 서울로 불러 대책을 논의하였다.

구리내 등은 삽량주(歃良州)의 간인 박제상(朴堤上)이 용감하고 지모(智謀)가 있으니, 이 외교의 적임자라고 추천하였다. 그리하여 박제상은 두 왕제(王弟)를 구출하게 되었다. 그 후 구리내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박제상의 가계와 관등 내마의 의미」(선석열,『신라국가성립과정연구』, 혜안, 2001)
「박제상과 5세기 초 신라의 정치 동향」(주보돈,『경북사학』21, 1997)
「박제상 소고」(김용선,『전해종박사화갑기념 사학논총』, 일조각,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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