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촌(一利村, 경상북도 성주군)의 유력자로서 어질고 지혜가 있었으며, 사람을 보는 혜안이 있었다.
402년(실성마립간 1) 눌지마립간의 두 동생 가운데 미사흔(未斯欣)은 왜국에 볼모로 가 있었고, 복호(卜好)는 412년 고구려에 볼모로 갔다. 눌지마립간은 417년 즉위하자 두 동생을 송환하기 위해 변사(辯士)를 구하였다. 그 적임자로서 일리촌 간(干) 구리내를 비롯하여 수주촌(水酒村) 간 벌보말(伐寶末)과 이이촌(利伊村) 간 파로(波老)를 서울로 불러 대책을 논의하였다.
구리내 등은 삽량주(歃良州)의 간인 박제상(朴堤上)이 용감하고 지모(智謀)가 있으니, 이 외교의 적임자라고 추천하였다. 그리하여 박제상은 두 왕제(王弟)를 구출하게 되었다. 그 후 구리내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