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신 ()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사찬으로 대야성 함락과 관련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사찬
관련 사건
대야성 함락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사찬으로 대야성 함락과 관련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훈신(訓信)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의 관리였다.

642년(선덕여왕 11) 8월 백제가 대야성(大耶城)을 함락시켰을 때, 도독(都督) 이찬(伊湌) 김품석(金品釋)과 그의 부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살해되었으며,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전사하였다. 고타소랑의 아버지 김춘추(金春秋)는 원수를 갚기 위해 사찬(沙湌) 훈신과 함께 고구려에 청병(請兵)하러 갔다가 오히려 연개소문(淵蓋蘇文)에 의해 억류되었다. 김춘추와 훈신은 교유(交遊)하였던 고구려의 관인 선도해(先道解)의 귀토설화(歸兎說話)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선덕왕대 김춘추의 외교활동과 정국동향」(김덕원,『신라사학보』5, 2005)
「연개소문과 김춘추」(노태돈,『한국사시민강좌』5, 일조각, 198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