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연희전문 상과,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52년 외무부에 입사, 1981년까지 여러 나라의 외교관으로 재직하였다. 「명태」, 「한강」, 「쥐」 등을 작곡한 작곡가로 그의 작품은 한국적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26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함남 중학교 시절부터 노래 잘하는 수재라고 인정받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연희 전문 상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1950년 1회 졸업생이 되었다. 대학 재학 중에도 정종길 선생에게 작곡을, 바리톤 최봉진 선생에게 성악을 배우고 가곡 「진달래꽃」, 「금잔디」를 발표하였다. 대구 피난 시절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 「녹향」에서 알게 된 양명문에게 시를 받아 「명태」를 작곡, 친구인 베이스 오현명에 의해 초연되었으나 ‘그것은 노래도 아니다’는 혹평을 받아 작곡가의 길을 접고 외무부에 입사한다.
1952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일본, 대만, 브라질, 영국, 포르투갈을 거쳐 파키스탄 총영사를 지냈다. 외교관 시절인 1979년에 「초혼」을 작곡하여 외교관 파티에서 불러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렸다.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음악계에서 소외당했음에도 명시에 곡을 붙이고 분단의 아픔, 통일 염원, 강산 예찬을 주제로 70여 곡의 가곡을 남겼다. 이전의 여성적이고 애상적인 한국가곡의 흐름을 벗어나 해학적 구성과 남성적 정서를 표현하여 그의 작품은 한국적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60년대 중반부터 재평가된 그의 가곡은 선율 혹은 리듬, 가사에서 민족의 애환을 담고 민요 가락이나 장단으로 노래의 맛을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세상살이의 애환을 가난한 시인의 술안주가 되어버린 명태에 빗댄 「명태」가 있고 「낙동강」, 「떠나가는 배」, 「한강,」 「설악산아」,「님의 침묵」 등이 있다.
2003년에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