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알 수 없다. 다만 자신과 자식들이 강원도 삼척의 군수를 지냈다고 말하고 다녔기에 ‘김군수’라고 불렸다. 실제로 군수를 역임했는지는 역시 알 수 없다.
생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1920년대에 일본인과 함께 브라질로 이민한 한인이라고 전한다. 애국심이 투철하여 3남 1녀의 자식들에게 한글은 물론 한국의 풍습과 관례를 익히도록 가르쳤고, 특히 브라질의 일본 학교가 아닌 브라질 학교를 다니게 하였으며, 당시 일본인 행세를 하던 김수조, 장승호 등과는 사귀지 않았다고 전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공작(Duque)’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63년에 농업 이민을 떠난 한인이 브라질에 도착하기 전에, 박동진 초대 주브라질 한국대사는 브라질에 정착한 반공포로 51명을 함께 간 15명의 문화사절단과 결속시키기 위해서 교민회장을 선출하도록 하였다. 이 때 둘째 아들인 김창수가 초대 교민회장으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