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에서 브라질 제1차 농업이민을 떠나던 백옥빈이 월간지 『신동아(新東亞)』 기자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서 작성하였다. 2014년 4월~6월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브라질 이민 50주년 기념’ 특별전을 열어 최초로 공개하였고, 당시에 공개된 원본을 2021년 3월 한국이민사박물관에 기증하여 당해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백옥빈은 1923년 11월 1일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2년에 의사인 고계순(高桂珣)과 결혼하였다. 1·4 후퇴 직전까지 평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가, 그 뒤 서울 영등포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1962년에 고계순의 4촌형인 고광순의 권유로 브라질 제1차 농업이민에 참여하였다. 곧 고광순은 1962년 1월 5일에 브라질에 파견된 문화사절단 15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귀국한 뒤 고계순과 백옥빈에게 브라질 이민을 권유하였다. 고계순은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 이민인 브라질 제1차 농업이민 단장을 맡았고, 참여 인원 103명 중에는 백옥빈의 세 아들과 외동딸도 포함되었다.
1962년 12월 15일에 백옥빈은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선적 치차렌카(Tjitajanenka)호를 타고 이민길에 올랐다. 당시 이 일을 취재하던 월간지『신동아』기자는 브라질 제1차 농업이민 단장의 부인이면서 이민 여성 가운데 최고의 지성인으로 알려진 백옥빈에게 특별히 일기를 쓸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백옥빈이 탄 배는 1963년 2월 12일에 브라질 산토스(Santos)항에 도착하였는데, 백옥빈은 오키나와, 홍콩, 싱가포르, 페낭(Penang), 모리셔스(Mauritius), 포르투갈령 로렌수 마르케스(Lourenço Marques), 더반(Durban), 포트엘리자베스(Port Elizabeth), 케이프타운(Cape Town),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산토스로 이어진 55일 동안의 항해 여정과 각 항구에서 일어났던 일을 일기에 그대로 적었다. 또한 브라질에 도착한 뒤, 브라질 농촌에 적응하기 위해서 ‘아리랑 농장’을 세우고 ‘더 넓은 땅에서 마음껏 배우고 실력을 발휘해보고 싶은 마음, 우리 자손을 좀 더 크게 키우고 활약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생활한 내용도 고스란히 기술하였다. 이 일기는 한국의 여성지인『여원』에 발표되어, 당시 ‘도피이민’이라고 불렸던 브라질 이민 과정을 한국 사회에 자세히 알렸기에, 1963년∼1966년에 브라질 이민자가 약 1,300명 정도로 늘어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 일기는 브라질 농업 이민자의 선상 생활 뿐만 아니라, 브라질 도착 이후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담고 있다. 자연히 한국 농업 이민자들이 브라질 사회에서 생활한 모습을 생생히 담은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브라질 교민회 3대 회장을 맡은 고계순과 함께 활동한 백옥빈의 모습을 통해서, 브라질 한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