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문화 ()

현대문학 /출판
문헌
1986년에, 브라질의 한인 시인 모임인 열대문화 동인회에서 창간한 해외 한인 잡지.
정의
1986년에, 브라질의 한인 시인 모임인 열대문화 동인회에서 창간한 해외 한인 잡지.
개설

『열대문화』는 브라질 한인사회에서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보인 황운헌 시인을 포함한 아홉 명이 1983년 “열대문화 동인회‘를 결성하고, 1986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문예동인지이다.

이민 20주년을 맞이한 1983년은 브라질 한인사회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혹자는 이 시기를 브라질 한인사회의 “낭만주의 시대”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동안 지적활동에 목말라 했던 일부의 사람들 - 권오식 김우진 목동균 안경자 연봉원 이찬재 주오리 한송운 황운헌 - 이 “열대문화 동인회‘를 결성하고, 3년 후인 1986년 12월 『열대문화』창간호를 발간했다. 이후 1995년 7월 제9호의 발간으로 약 10 년 동안 총 9권의 책자를 발간했다 (안경자동인은 이것을 ”시즌 I“이라 명명).

이후 브라질에 닥친 불경기, 일부 동인의 미국으로의 재이주와 사망으로 약 17년 동안 휴간했다. 그러다가 2013년 브라질 한국이민 50주년을 앞두고 체제를 재정비하여, 2012년 8월 "시즌 II"로 제1권(통권 제10권)을 발간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13년 제11권도 발간했다.

편찬/발간 경위

1980년대 브라질의 경제는 년 1,000%가 넘는 인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10년”으로 정의되지만, 브라질의 한인사회는 오히려 경제적 부흥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브라질 사회에 전문직으로 진출했던 1.5세들의 위기 - 그들은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게 됨 - 가 한인사회에는 또 다른 기회 -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로 교육받는 사람들의 한인사회로의 흡수 - 가 되어 한인사회의 중추 산업인 여성 의류 제조업를 전문화시키고 또한 체계화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의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됨에 따라서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브라질 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적응과 동화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 그리고 언어와 관습 등 후세들의 한국의 전통 문화 유지에 대한 문제들에 심각성을 느끼던 사람 아홉 명의 동인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려는 목적으로 1986년 12월 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

서지적 사항

『열대문화』의 편집인들은 동인지의 겉표지를 동인이나 동인 가족의 그림이 사용했다. 그리고 출판 비용은 전적으로 한인사회로부터 후원받아 충당했기 때문에, 각 호의 맨 뒷장에는 “도와주신 분들”이라는 항목에 개인이나 그룹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1990년 브라질의 시장개방정책이 시작된 이후 발행된 제7호부터는 후원자들의 이름 대신, 후원자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광고를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8호부터는 컴퓨터로 편집이 가능하게 되어, 양삼열 목사(새로남 선교교회)가 세운 인쇄소를 사용했다.

브라질 사회에서『열대문화』의 동인들은 과거의 이력과 활동분야 그리고 관심분야가 다 다른데, 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운헌(黃雲軒, 1931년 11월 함남 단천 태생으로 2002년 5월 5일 브라질에서 사망)은 브라질 이민 전 한국에서 시인 - 1957년『문학예술지』와 1958년『사상계』에 등단 - 으로 『불의 연주(1969)』와 『산조로 흩어지는 것들(1986)』시집을 남겼고, 동시에 기자로서 1973년부터 「경향신문」과 「주간경향」에서 문화부 부장을 지냈다.

연봉원은 이민 당시 서울대 불문과를 재학 중이었다. 그는 브라질 도착 이후, 법대를 나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재이주하여 60세의 나이로 보스톤대학 로스쿨에서 LLM 학위를 취득하여, 현재 뉴욕에서 국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주성근은 <한인복지회>를 세운 초창기 멤버로 한국정부로부터 2008년 10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한 바 있다.

김우진(한림대 김우택 교수의 형)은 연대 사학과 출신으로 1980년대 후반 브라질 한인사회에서 유일하게 활동하는 컬럼니스트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기고하던 신문 「뉴스브라질」과 같은 광고지 「상파울로 저널」을 1990년대 초반 설립하여 2012년까지 운영했다.

안경자와 이찬재는 부부로 1983년 브라질에 도착했다. 두 사람 다 서울대 사대 출신으로, 브라질 이민 전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와 지리교사로 일했었다. 특히 안경자(1942년생)는 국어 교사 출신이기 때문에 상빠울로 한국학교 제2대 교장으로 추대되었고, 70이 넘은 오늘날에도 브라질의 사립학교(Rumo)와 외국인학교에서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열대문화』」가 발간 된 10년 동안 초기 아홉 명의 동인에도 변화가 있었다. 제5호 발행이후 권오식과 한송운이 탈퇴했고, 제7호 발행(1990년)에 이도재(1993년 타계)가 새로이 동인으로 참가했다. 제9호(1995년)가 발간되고 휴간 상태였던 1998년, 그동안 후원자였던 정재선(당시 Nabiran의 안주인으로, 오늘날 Sarafina의 안주인)이 동인으로 합류했다.

내용

『열대문화』는 창간호에서 한인들이 브라질 사회에 적응하는데 나타날 수 있는 갈등과 한국의 전통문화와 언어습득에 대한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동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교민들로부터 브라질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원고로 받아 개제하고 있고, 또한 브라질에서 대학을 나온 동인들이 브라질의 역사나 사회 그리고 단편 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986년부터 브라질에 도착하기 시작한 유학생들의 원고와 논문들도 싣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 이민자들이 브라질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브라질 사회에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려는 노력을 한 문예동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열대문화 동인회”는『열대문화』발간 외에도, 한국의 문학계 언론계 학계 예술계 연예계의 인사들과 교류함을 물론, 해외한인 문인들과 교류하며 자신들의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참고문헌

『브라질한인이민 50년사(1962~2011)』(브라질한인이민사편찬위원회, 도서출판 교음사, 2011)
『열대문화』(1985~1995)
『열대문화』(2012~)
집필자
최금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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