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에 이민을 온 약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8년에 브라질에 도착한 뒤 일본인 아내의 성을 따서 ‘미다’라는 성을 사용하였다. 평생 쌀 장사를 하였기에 ‘쌀 할아버지’, ‘미다 할아버지’라고 불렸다.
1907년 3월 23일에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10살 때에 구세군의 메시지를 듣고서 기독교 신앙인이 되었는데,12살에 교회에 다니는 것을 비난하는 가족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갔다. 1928년에 일본인 이민자의 선교를 위해서 일본인 선교사를 따라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1938년에 일본인 아내를 맞아 아들 2명, 딸 7명을 낳았고, 2000년 5월 1일에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1956년 2월 6일에한국전쟁 반공포로 51명은 2년 동안 중립국 인도에서 생활하다가 브라질로 이주하였다. 당시 브라질 외무성은 소통을 염려하여 반공포로들을 맞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장승호는 김수조·이중창 등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공항에 나아가 반공포로를 맞이하는 것은 물론, 집에서 성심껏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특히 반공포로인 김창언을 셋째 사위로 삼기도 하였고, 1957년 9월 15일에 김수조가 일본인 국적으로 브라질에 온 한국인들과 반공포로들을 모아 한백인회를 조직하는데도 참여하였다. 그 뒤 1961년에 문화사절단 15명이 브라질에 왔을 때나 1960년∼1970년대에 한인들이 농업과 기술 이민을 왔을 때도 브라질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해방 후 브라질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현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준 대표적인 브라질 한인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