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봉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불상 내부에서 조성발원문을 비롯한 1710년 개금발원문, 1904년 입지발원문과 후령통, 상지은니사경, 다라니 등 다량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1586년(선조 19)에 선조와 선조비, 명종의 며느리인 순회세자비 덕빈윤씨 등 왕실의 안녕과 불사에 관여한 사람들이 확인되며, 영가(靈駕)를 위한 점안법회를 열어 극락왕생을 염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운(蘿雲)과 법정(法正) 두 화원에 의해 제작되었고, 31명의 시주자와 승려들이 불사에 동참하였음도 확인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51.5㎝로,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채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엄지와 중지를 마주한 손모습을 취하였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는 끝이 날카로운 나발, 둥근 정상계주, 반달형의 큰 중간계주를 표현하였고 볼이 통통한 세장방형 얼굴에는 반개한 눈, 뭉툭한 코, 작은 입을 오밀조밀하게 나타내어 친근한 인상을 준다. 유난히 짧은 목에는 삼도를 뚜렷하게 음각하였다. 착의법은 좁은 어깨에 변형통견식으로 대의를 걸쳤는데 간결하게 옷주름을 표현하였고, 살짝 굴곡진 가슴 아래로 일자형 승각기가 보이며 양 무릎 위 주름은 뚜렷하게 각진 듯 굴곡이 강하다. 이러한 착의법은 대체적으로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여래좌상(1466년),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1564년 이전) 등과 닮았으나 이들 조각보다 좀더 형식적이고 간결하게 변화된 모습이다.
문경 봉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586년에 화원 나운과 법정에 의해 조성되었음이 밝혀져 현존 작품이 많지 않은 16세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희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조선 전기에서 조선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조성되어 조선시대 불교조각사 양식 흐름 연구에도 중요한 작품이다. 조성 배경에 선조와 선조비, 명종의 며느리인 순회세자비 덕빈 윤씨의 만수무강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어 봉암사와 왕실의 관계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