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이산해(李山海)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구성 및 형식
내용
아계(鵝溪) 이산해(1539∼1609)는 선조와 광해군대에 걸쳐 모두 네 차례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우선 1590년(선조 23)에 광국공신(光國功臣)과 평난공신(平難功臣)에 포함되었다. 사후(死後)에도 1612년(광해군 4)에 정운공신(定運功臣)으로, 1613년(광해군 5)에 익사공신(翊社功臣)으로 책록되었으나 인조반정 뒤 삭훈되었다. 그리고 설사(雪蓑)남이공(南以恭, 1565∼1640)의 「아계선생화상찬(鵝溪先生畵像贊)」이 전하고 있어 늦어도 1640년(인조 18) 이전에 제작된 이산해의 초상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공신 책록을 계기로 제작된 작품과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이 초상화의 세부 표현, 특히 어두운 안색을 비롯해 미간과 눈자위, 콧망울과 법령(法領)에 가해진 음영 표현으로 인해 공신 책록 당시의 원본으로 보기는 어렵다. 진한 갈색을 덧칠한 음영 표현이 어색하고 여러 겹의 쌍꺼풀과 주름살, 필선을 반복해서 묘사한 수염이나 흉배의 공작 문양 등이 엉성한 편이다. 한편 1894년(고종 31)이산해의 후손 수당(修堂)이남규(李南珪)가 이 작품을 모본으로 삼아 2점의 「이산해 초상」를 더 제작했는데,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수당고택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돌베개, 2009)
- 『한국의 초상화』(문화재청 편, 눌와, 2007)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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