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안정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목조지장보살좌상과 제4대왕 오관대왕상에서 복장 발원문을 비롯하여 후령통, 경전류 등이 발견되었다. 지장보살상 복장 발원문은 일부가 훼손되어 조성연대, 봉안처 등이 확인되지 않지만 제작에 관여한 인물과 시주자 명단이 상세히 기록되었다. 즉 불상 제작에 수화승 삼인(三認)을 비롯해 10여 명의 화원과 일반인 야장(冶匠)이 조성에 참여하였고, 산중노덕(山中老德)과 선덕(禪德), 그리고 90여 명의 사내질(寺內秩) 등 100여 명 이상의 승려들도 참여하였다. 또한 오관대왕상을 제작한 화원은 삼인, 옥림(玉琳), 자경(慈敬), 청민(淸敏) 등인데, 모두 지장보살상 복장 발원문 화원질에서도 확인되는 인물들이다. 안정사 나한전 삼존상의 대좌상면 묵서에는 1759년에 나한전과 명부전의 불상이 중수되었다고 기록되었으며, 만세루에 걸린 현판에 안정사 명부전 중건기에는 1924년에 또 한 차례 불사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무독귀왕상(좌측 도명존자상은 도난) 1구, 시왕, 귀왕, 판관, 사자, 인왕상이 대칭구조를 이루며 배치되었다. 민머리형의 지장보살상은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엄지와 검지를 맞댄 손모습을 취하고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로 앉아 있다. 몸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어깨는 좁으며 무릎 폭은 넓어 안정감이 있다. 이마가 넓은 큰 얼굴은 반개한 눈, 오똑하고 큰 코, 두텁고 또렷한 입술을 표현하여 근엄한 표정이 연출된다. 착의법은 변형 통견식으로 편삼 위에 대의를 걸쳤고, 가슴 위로 일자형의 승각기를 입었는데 옷주름들이 대칭을 이루듯 도식적이고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양다리를 덮은 군의는 다리 사이에 두 개의 크고 굵은 주름이 보이며, 끝 부분은 물결치듯 표현하여 부드러우면서도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머리에 통천관과 비슷한 관을 쓴 무독귀왕상은 서있는 자세로 신체가 길쭉한데, 포를 걸치고 양손을 모아 쥐었다. 얼굴은 본존과 유사하나, 턱이 뾰족하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표현하였다. 지장보살상의 좌우에 배치된 시왕상은 얼굴과 신체 비례는 무독귀왕상 등과 유사하지만, 받침과 손잡이에 봉두(鳳頭)가 장식된 의자에 앉은 자세이다. 이 시왕상은 경책이나 홀을 들거나 혹은 머리에 경책을 얹어 그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역할을 다양한 표현력과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시왕상 옆으로 손을 포개어 쥔 판관상, 두루마리와 붓을 든 사자상, 복숭아와 연꽃·동물 조각을 든 동자상, 그리고 한쪽 주먹을 움켜쥐고 눈을 부릅 뜬 무서운 인상의 인왕상이 있다.
안정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상, 무독귀왕을 비롯한 시왕 등 권속 일괄은 1655년에 수조각승 삼인을 비롯한 화원과 야장, 조역(造役)을 담당한 13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한 작품이다. 이 불상군은 17세기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복장 발원문을 통해 조성 시기와 조성에 관여한 인물을 파악할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와 조각승 계보 문제, 명부신앙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