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용문사 대장전(大藏殿)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목조삼존불좌상의 후불탱으로 봉안된 작품이며 불화인 동시에 조각의 성격을 지닌다. 관련 기록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하단부의 묵서 화기와 2001년 수리 복원할 당시 목각탱에서 발견된 ‘백지묵서 용문사금당시창복장기(白紙墨書龍門寺金堂始創腹藏記)’에 의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갑자년인 1684년에 조성되었음을 밝혔다. 또한 복장기에는 소영당(昭影堂) 신경대사(神境大師)가 금당을 중건하며 소영당대사의 제자인 홍택(弘澤), 정심(淨心), 황막금(黃莫金), 이신원(李信元)이 큰 서원을 세워 불상과 미타회판탱(彌陀會板幀) 제작을 주관하였다고 한다.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높이 265.5㎝, 너비 218㎝의 직사각형 화면 좌우에 봉황, 빛, 구름이 장식된 능형 장식판을 붙인 비교적 큰 목각탱이다. 화면은 세로로 긴 목판 5매를 이었고, 그 상단에 2매, 하단 1매, 중심부 왼쪽 구름만 표현한 목판 1매, 테두리를 장식한 능형판 2매 등 모두 12매의 판목 위에 다양한 존상들이 조각되었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팔대보살과 사천왕,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삼단으로 배치되었다. 불상의 윗면에는 아미타불 머리 위로 상서로운 구름이 뻗쳐나가고 존상 간의 구획 및 여백에는 연봉, 연잎, 넝쿨가지를 새겨 화면을 가득 메웠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상 높이가 46㎝로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배모양의 광배를 갖추었으며 방형의 얼굴에 변형통견식 대의 그리고 평면적인 옷주름 등이 특징이다. 2, 3단에 있는 팔대보살은 본존불과 비례, 얼굴, 옷 표현 등은 유사한데 민머리형의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손에는 각기 다른 지물을 쥐고 서 있다. 여의가지와 연봉우리를 든 문수와 보현, 정병과 경책을 든 관음과 대세지, 금강저와 검을 든 금강장과 제장애, 연꽃모양 용화수와 연봉우리를 각기 든 미륵보살과 석장과 보주를 든 지장보살이 표현되었다. 이 보살 가운데 미륵과 제장애보살은 복부에 복갑과 무릎 갑대를 착용하고 있어 복식에서 조금의 차이는 있다. 미륵과 지장보살 옆에는 늙은 가섭과 젊은 아난이 측면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장검을 든 동방지국천왕,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증장천왕,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왕, 당과 보탑을 든 서방광목천왕이 투구나 보관을 쓴 무인의 모습으로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데 그 자세가 매우 역동적이다.
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의 가장 큰 특징은 사각의 화면 틀에 장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적은 명문과 화기로서 좌우와 하단의 틀에 만(卍), 명심(明心), 범어 옴자, 그리고 팔괘(八卦)를 새겼다. 외곽의 좌우 틀에 적힌 글은, ‘대우주 안의 무량한 찰토, 삼세의 공과 색은 원만한 법, 미래 극락세계의 연지에 구품, 아미타삼존과 성스러운 스님에게 귀의합니다.’라는 극락세계의 구품왕생에 대한 내용이다. 명심은 깨달음을 일으키는 흔들리지 않는 밝은 마음을 말한다. 또한 다양한 연꽃, 연봉우리, 연잎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고 천개조차 연꽃을 뒤집은 모양으로 표현되는 등 아미타극락회를 극대화시켜 형상화하였다. 상단부의 빛과 구름들이 뻗어나가는 곡선도 동세가 강하여 역동적이다.
2001년 8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목조삼존불좌상과 함께 균열 및 훼손, 결손 부분을 원래 모습대로 수리, 복원하고 도금하였다. 조선후기의 목각탱으로는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이외에도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1987년 지정),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75. 보물, 1973년 지정),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세기 말경. 보물, 1983년 지정),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94년. 보물, 1987년 지정),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782년. 보물, 1965년 지정) 등이 있다.
용문사 대장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아미타극락회상 장면을 조각으로 극대화시켜 형상화한 작품으로 정교함과 역동성,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성을 가진 우수한 목각탱이다. 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1684년 소영당대사 신경이 총괄 책임하에 금당, 목조아미타삼존상과 동시에 제작되었는데,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주존불상과 후불 목각탱이 함께 남아 있는 작품도 드문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