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국 경제는 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자본을 축적하였다. 재정, 금융, 산업에서 원조물자의 배분과 판매, 그리고 그 판매대금인 대충자금을 근간으로 한 재정투자와 기업에 대한 금융혜택이 한국 경제를 움직였다. 당시 시중환율보다 훨씬 낮은 공정환율로 원조물자를 배당받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었으므로 정경유착이 체질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정치자금과 뇌물 헌납 등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시설재와 원자재 등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몇 가지 공업분야를 집중 육성했다. 그것은 면방직, 설탕업, 밀가루제조업, 즉 삼백공업이었다. 값싼 원조물자를 독점으로 배정받아 가공 판매할 수 있었던 소수의 자본가들은 순식간에 시장을 독점하고 재벌로 등장하였다. 1950년대 공업화의 주력산업이었던 삼백산업의 원료는 값싼 잉여농산물로 충당되어 국내의 밀, 면화 생산을 도태시켰고, 특히 1956년부터 들어온 PL 480호에 따른 미국의 잉여농산물 도입으로 한국 농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의 원조물자에 의존하던 1950년대 한국경제는 1957년 미국이 무상원조를 급격히 줄이는 대신 유상원조로 바꾸면서 그 폐해가 나타났는데, 1957년 이후 삼백공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 경제는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