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는 한인의 친목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 북가주(Northern California)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한인단체이다. 1903년에 도산 안창호가 「한인친목회」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는데 1905년 최초의 한인 정치 단체인 「공립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이 단체의 회원 전명운이 1908년 친일 미국인 스티븐즈를 사살하였다. 전명운과 함께 스티븐즈를 사살한 장인환을 변호하기 위해 「대한인국민회」를 결성되어 1936년까지 유지되었다. 해방 이후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1965년에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의 모체가 되는 「샌프란시스코한국인교민회」가 설립되었다.
정의
한인(韓人)의 친목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 북가주(Northern California)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한인단체.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한인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2년 유학생 신분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 이듬해인 1903년 오늘날의 한인회 성격을 갖는 「한인친목회」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다. 이 친목회는 2년 뒤 「공립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공립신보」라는 주간신문을 발행했다. 참고로 전명운 의사는 바로 이 「공립협회」 회원이었다. 이것이 미국 본토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한인 정치단체이며, 첫 번째 언론기관이다.
1908년 스티븐즈 피살사건이 일어나자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 산재해 있던 10여 개의 한인 단체대표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대한인국민회」를 결성하고 살인죄로 기소된 장인환 의사 변호를 위한 후원금을 모았다. 미국 정부도 인정한 이 「대한인국민회」총회본부는 1936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지되었다. 물론 해방 이전의 재미 한인의 숫자는 매우 적었으므로 한인 단체들이 크게 성장할 수 없었다.
해방 이후 국제결혼, 입양, 유학, 취업을 통해 이민자의 증가가 약간 이루어졌으나 1964년 북가주 일원의 한인 수는 45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북가주지역의 한인수는 1965년 이민법개정 이후 급격하게 불어나, 1970년 초에 이르면 그 숫자가 1만 명, 1970년대 후반에는 2만 5천여 명, 1980년 초반에는 4만여 명으로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이러한 역사적, 인구학적 배경 하에 샌프란시스코한인회가 탄생하고 성장하였다.
오늘날 샌프란시스코한인회의 직접적인 모체가 되는 단체는 1965년 12월 26일에 출범한 「샌프란시스코한국인교민회」(초대회장 김동우)로, 이 단체는 197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지역한인회」(Korean-American Community of San Francisco Bay Area)로 개칭되었다. 2013년 현재 제28대 회장이 한인회를 이끌고 있다.
기능과 역할
현황
참고문헌
-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정지원,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 한미동포재단,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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