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한인회 (San Francisco )

현대사
단체
한인(韓人)의 친목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 북가주(Northern California)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한인단체.
이칭
이칭
샌프란시스코 한국인 교민회, 샌프란시스코지역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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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인(韓人)의 친목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 북가주(Northern California)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한인단체.
개설

북가주에 있는 10여 개의 한인회 중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모여 살고 있고, 미국 서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성장해 온 한인회이다.

설립목적

다른 한인회의 설립과 같이, 샌프란시스코 한인의 친목을 도모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샌프란시스코는 장인환, 전명운 의사(義士)가 1908년 3월 23일 친일 미국인 스티븐즈(Durham W. Stevens)를 사살한 애국정신이 깃든 곳이다.

한인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2년 유학생 신분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 이듬해인 1903년 오늘날의 한인회 성격을 갖는 「한인친목회」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다. 이 친목회는 2년 뒤 「공립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공립신보」라는 주간신문을 발행했다. 참고로 전명운 의사는 바로 이 「공립협회」 회원이었다. 이것이 미국 본토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한인 정치단체이며, 첫 번째 언론기관이다.

1908년 스티븐즈 피살사건이 일어나자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 산재해 있던 10여 개의 한인 단체대표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대한인국민회」를 결성하고 살인죄로 기소된 장인환 의사 변호를 위한 후원금을 모았다. 미국 정부도 인정한 이 「대한인국민회」총회본부는 1936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지되었다. 물론 해방 이전의 재미 한인의 숫자는 매우 적었으므로 한인 단체들이 크게 성장할 수 없었다.

해방 이후 국제결혼, 입양, 유학, 취업을 통해 이민자의 증가가 약간 이루어졌으나 1964년 북가주 일원의 한인 수는 45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북가주지역의 한인수는 1965년 이민법개정 이후 급격하게 불어나, 1970년 초에 이르면 그 숫자가 1만 명, 1970년대 후반에는 2만 5천여 명, 1980년 초반에는 4만여 명으로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이러한 역사적, 인구학적 배경 하에 샌프란시스코한인회가 탄생하고 성장하였다.

오늘날 샌프란시스코한인회의 직접적인 모체가 되는 단체는 1965년 12월 26일에 출범한 「샌프란시스코한국인교민회」(초대회장 김동우)로, 이 단체는 197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지역한인회」(Korean-American Community of San Francisco Bay Area)로 개칭되었다. 2013년 현재 제28대 회장이 한인회를 이끌고 있다.

기능과 역할

한인회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은 한인의 친목과 권익보호이며, 샌프란시스코한인회에서는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타민족 집단과의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현황

샌프란시스코한인회는 그 뿌리를 1912년에 창립된 「대한인국민회」상항중앙총회에서 찾으려는 정신을 계승하여 애국지사 전명운, 장인환 의사의 의거 기념추도식을 매년 한인회관에서 거행하고 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가 국제적 문화도시인 점을 감안하여 해마다 진행하는 「한국의 날」 행사에서 케이팝(K-Pop), 태권도, 한국무용, 한식(韓食)문화체험 등을 이용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한국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2년에는 오렌지카운티의 「한인축제재단」과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정지원,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 한미동포재단,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집필자
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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