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코리아타운 (New York Koreatown)

코리아타운
코리아타운
인문지리
지명
뉴욕에 있는 한국인 밀집지역 또는 상업구역.
이칭
이칭
K-Town, 한인타운, 플러싱 코리아타운, 한국의 거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뉴욕 코리아타운은 뉴욕에 있는 한국인 밀집지역 또는 상업구역이다. 1960년대 한국이민 1세대는 주거비가 저렴한 퀸즈 라과디아 공항 옆 플러싱에 자리 잡아, 자연스렵게 플러싱 코리아타운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맨하탄 32번가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비즈니스타운 성격의 한인 상가가 형성되면서 케이 타운(K-Tow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퀸즈의 플러싱 지역은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하였다. 맨해튼 32번가 일대의 한인 타운은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장하여 400여 개에 달하는 한인 업소와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정의
뉴욕에 있는 한국인 밀집지역 또는 상업구역.
개설

뉴욕의 코리아타운은 1990년대 말까지만해도 맨해튼(Manhattan)의 32번가 지역과 퀸즈(Queens)의 플러싱(Flushing)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퀸즈의 플러싱지역은 중국인의 진출에 밀려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하였고, 이제는 맨해튼 32번가 일대의 한인밀집지역이 코리아타운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명칭 유래

1960년대 이래 플러싱은 뉴욕시 한인인구가 가장 많이 몰려 살던 지역이었다. 특히 플러싱 중심가(특히 루즈벨트 애비뉴와 유니온 스트리트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한 수 블록)에는 한인들의 주거 및 한인소유 가게가 밀집되어 있어 흔히 “플러싱 코리아타운”으로 알려져 왔다. 뉴욕의 다른 한편인 맨해튼에는 1970년대 이후 32번가 일부에 한인업소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면서 이 지역을 미국인들이 케이 타운(K-Tow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32번가(32nd Street)에서 5번가(5th Ave.)와 브로드웨이(Broadway) 사이의 길 명칭은 공식적으로 한국의 거리(Korea Way)로 통용되고 있다.

자연환경

뉴욕 맨하탄의 코리아타운은 뉴욕관광의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부근에 위치하여 세계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구에 가깝다는 이점과 교통여건이 보행인에게 편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일반인이나 관광객들이 모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적 장점 때문에 맨해튼의 코리아타운은 그 성장세를 계속 이어 갈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뉴욕의 맨하탄에 자리한 한국의 거리는 그러한 문화적 다양성의 한 부분을 형성함으로써 뉴요커나 관광객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즉 이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한글간판이나 한국의 토속적 음식점 등이 그러한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형성 및 변천

1960년대 뉴욕으로 온 한국이민 1세대의 많은 수가 뉴욕에서 비교적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경제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퀸즈 라과디아 공항 옆 플러싱에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플러싱의 메인 스트리트에서 출발한 한인 상가는 동쪽으로 영역을 넓혀나갔고, 자연스럽게 코리아타운이 형성됐다. 그 한복판엔 공영주차장이 자리 잡았다. 주차가 편리하다 보니 코리아타운은 플러싱 상권의 핵심이 됐으며, 한인 상가가 밀집한 메인 스트리트는 뉴욕시에서 세 번째 번화한 거리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정작 생활이 안정되자 한국인들은 자녀교육문제로 플러싱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둘 좋은 학군을 좇아 이웃 낫소카운티나 아예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로 옮겨갔다. 지난 2000년 센서스 통계를 보면 1990년에는 뉴욕시 한인 인구의 72%가 퀸즈에 거주했으나, 2000년에는 24%로 크게 줄었다. 한국인이 떠난 자리에는 중국인들이 들어와 틈을 메웠다. 그래서 이제 한국어 간판이 즐비하던 거리는 낯선 중국어 광고판으로 바뀌었다.

한편 1970년대 맨하탄에는 야채가게와 샐러드 바를 운영하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한인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럽게 식당, 술집, 그 외의 다른 비즈니스들이 생겨나면서 한인타운이 형성되었다. 맨하탄의 코리아타운은 거주지역보다는 비즈니스타운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맨하탄에는 32번가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한인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맨하탄 거주 한인들은 미국에 오래 거주한 이민자들, 미국회사에 근무하는 고학력자 교포 2세들, 그리고 이 지역의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맨하탄의 식당을 찾는 고객의 상당한 비율은 이들 한인 2세 및 미국인들이다.

플러싱과는 대조적으로 맨하탄의 코리아타운은 갈수록 면모를 일신하여 점차 미국인들에 의해 케이 타운(K-town)으로 불리며 미국 주류 젊은이들도 즐겨 찾는 장소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발전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은 보도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즉 2012년 10월 16일자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뉴욕 맨해튼의 한인타운이 번창하면서 임대료가 주변 지역의 2배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맨해튼 32번가의 한인타운은 플러싱과는 달리 한인들이 떠나지 않고 최근 부상한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 더욱 성장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은 한인타운과 맞닿은 5번가와 주변 스트리트에 한국 식당과 프랜차이즈 빵집이 속속 들어서는 등 주변 지역으로 팽창하고 있다.

현황

맨해튼 32번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부근의 한인 타운은 주변지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추세이다. 길이 200m 남짓한 거리에 낯익은 한글 간판의 한식당. 미용실, 노래방, 한인 마트 등 400여 개에 달하는 한인 업소와 사무실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1960년대만 해도 우범지대였던 이곳이 한국상점과 식당, 마켓 등이 들어서면서 점차 미국인들에게도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맨하탄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식당은 물론 한국마트, 우리은행, 미용실, 분식집, 호프집, 노래방, 베이커리, 포차, 한의원 등 거의 모든 종류의 가게들이 존재하고, 최근에는 한국의 기업형 점포들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즉 한국의 대표 상표인 더 페이스 샵(The Face Shop), 제과업체인 뚜레쥬루(Tous les Joures), 파리바케트(Paris Baguette), 교촌치킨 등이 문을 열었고, 한국 신간 책이나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고려서적, PC방(Internet Cafe) 뿐만 아니라, 한인소유의 호텔인 스탠포드호텔(Stanford Hotel)이 있어 한국인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참고문헌

『뉴욕한인사회의 현상과 교육문제』(이광규, 북코리아, 2011)
「뉴욕 뉴저지지역 한인사회」(민병갑, 『미주한인이민100년사』, 한미동포재단,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LA중앙일보』(2012.10.18)
『재외동포신문』(2006.3.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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