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0월 8일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리에서 출생하여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서울 대동상업학교를 중퇴했다. 동아일보사 기계공으로 일하다가 1940년 극단 아랑의 배우로 연극계에 발을 디딘다. 이후 북한으로 가 1946년 중앙예술공작단 배우, 1950년 국립극장 연극배우, 1958년 국립연극극장 부총장, 1962년 국립연극단 연출가로 활약하며 196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다. 1965년에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1972년 김일성상 계관인, 1979년 8월 조선연극인동맹 중앙위 위원장을 역임한다. 1985년 남북고향방문단원으로 서울을 방문하고, 1986년 11월 제8기 대의원, 1990년 4월 제9기 대의원, 1991년 1월 조통연합 북측본부 중앙위 위원, 국립연극단 연출고문, 국립연극단 인민배우, 1998년 7월 제10기 대의원, 2003년 9월 제11기 대의원으로 활약하다가 2004년 1월 3일 12시에 8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단은 북한에서 배우와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연극작품들에서 연기와 연출을 담당했다. 배우로서의 대표작은 「이순신」, 「한 의학자의 길」, 「인민교원」 등이다. 그는 사색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성격이 어울린 짜임새 있는 연기를 보이며, 이성적인 외모와 연기 스타일로 레닌의 역을 자주 맡았다.
1962년부터 30년 가까이 연극연출가로 활동했는데, 초기에는 ‘자본주의적·교조주의적 잔재로 종래의 낡은 연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은바 있다. 이후 1970년대 말 김정일이 지도한 연극혁명에 참가하면서부터 주체적인 연극의 참된 연출가가 되었다고 북한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단은 혁명연극 「성황당」을 비롯해 「혈분만국회」, 「딸에게서 온 편지」의 연출과 혁명연극 「3인 1당」과 「경축대회」의 연출고문을 맡으며, 혁명연극 「딸에게서 온 편지」를 작업할 때는 김일성 탄생 80돌까지 혁명연극 「승리의 기치따라」를 형상하라는 특명을 받기도 했다. 2004년 1월 3일 12시에 85세로 사망했다. 이단은 북한예술계에게 있어서 혁명연극 「성황당」, 「혈분만국회」, 「딸에게서 온 편지」를 비롯한 작품들을 ‘성황당식 연극’으로 형상한 연출가이며, 40여 년간 북한의 문예정책과 문예방침에 따라 북한의 연극 발전에 기여한 배우·연출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