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흥부에서 관리생활을 시작해 상공부에서 통상진흥국장, 국제협력차관보, 상역차관보를 맡았다.
1981년 전매청장을 지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으로 학계에 머물다 1989년 상공부 장관으로 관계에 복귀했다. “성장은 수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수출에 대한 집념이 강한 인물이었으며, 197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9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통상장관회담의 수석대표로 참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참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기아경제연구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 상공부 전직 관료들 및 옛 상공부 출신 공무원들의 모임인 상우회 회원들과 삼척 경동탄광 관련시설 시찰을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한국생산성본부 재임 기간 중 국내 처음으로 체계적인 공장 및 사무자동화 사업을 추진한 공로로 아시아생산성기구(APO)가 수여하는 APO 국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