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서 설법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선재동재(善財童子)가 방문하여 법을 청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엄경』 권68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의하면 남순동자(南巡童子, 또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善知識)을 만나 도를 구하던 중 28번째로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의 금강보석(金剛寶石)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 있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에게 보살행(菩薩行)과 보살도(菩薩道)에 대해 묻는 장면이 있는데, 이 벽화에는 바로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방문을 받고 설법하는 관자재보살을 벽면 전체에 꽉 채우듯 크게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이 관음벽화는 1712년에 대웅전을 다시 고쳐 세웠을 때, 또는 1713년에 천왕문의 채화 및 사천왕상 및 약사전의 단청이 이루어졌을 때, 또는 영산전이 신축되고 더불어 팔상도가 조성된 1729년경 사이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관음보살은 녹색의 두광을 배경으로 왼쪽 손은 허리 옆으로 내려 바닥을 짚고, 오른쪽 손은 무릎 위에 얹은 채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반가좌하였다. 머리에는 중앙에 아미타화불(阿彌陀化佛)을 새긴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이마 위에 머리카락 위로는 연화문과 각종 꽃으로 장식한 보주로 띠를 둘렀으며, 귀 뒤쪽으로 내려온 종 모양의 장신구와 화염보주에는 갖가지 구슬을 장식하였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는 가늘고 긴 눈썹과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 큼직하고 쭉 뻗은 코, 작고 붉은 입술 등이 가늘게 묘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관음보살이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여성적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양팔 위로는 굵은 타래 모양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착의법은 홍색·녹색이 어우러진 군의(裙衣)를 착용하고 그 위에 녹색의 옷을 걸쳤는데, 가슴 아래로는 수평으로 가로지른 승각기(僧脚祇)와 보주를 장식한 띠 매듭이 보인다. 옷에는 문양이 거의 표현되지 않아 단조롭게 보이지만 몸 전체에 걸쳐 각종 영락(瓔珞)으로 장식을 해서 매우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으로 보인다. 팔목·손목, 허리, 무릎 등에도 갖가지 영락이 장식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뒤로는 바탕을 연녹색으로 칠한 뒤 옅은 선으로 기암괴석(奇巖怪石)을 그렸으며, 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농묵(濃墨)으로 굵은 줄기에 가는 잎이 달린 대나무를 그렸다. 보살의 좌측 중앙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는데, 긴 주둥이와 손잡이를 갖추었으며 몸체에는 검은색과 적색을 교대로 사용하여 가로로 띠 모양의 문양을 그려 넣었으며 윗부분에는 녹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관음보살의 향좌측 하단에는 쌍상투에 합장을 한 선재동자가 매우 작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동자는 맨발의 두 발목과 팔목에는 각각 붉은 띠를 두르고 긴 천의자락을 어깨에 걸친 채 무릎을 굽히고 관음보살을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하였다. 머리에는 흰색 구슬로서 장식하였고 다소 긴 얼굴에는 어린 동자의 긴장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과 선재동자의 표현은 조선 후기 관음보살의 양식과도 상통하는 것으로서 정면을 향한 자세, 근엄한 얼굴, 화려한 보관과 영락장식, 정병의 유형 등 도상의 유형과 기물, 진녹과 양녹의 조화와 주황과 장단의 채색에서 18세기 불화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영락으로 장식된 쌍계머리를 하고 나신(裸身)의 상의에 천의를 걸치고 백색 바지 위에 적색 치마를 걸치고 합장한 선재동자의 모습이라든가 관음의 주처 보타락가를 표현하면서도 물가 표현을 하지 않은 것 등은 다른 후불벽 관음보살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보채(補彩)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좌우로 넓게 퍼진 보관과 영락장식, 옅은 수묵기법으로 그려진 기암괴석과 대나무 표현,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의 모습 등에서 18세기경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얼굴에 보이는 강한 음영은 보채가 이루어지면서 보다 강렬하게 표현되었지만, 이러한 기법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불화에 나타나는 음영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