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86㎝, 가로 289.5㎝. 3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상궁들의 시주에 의해 제작된 감로도로서 1883년에 대허 체훈(大虛 軆訓)과 천기(天機), 수일(守一), 태삼(台三) 등이 조성하였다.
가로로 긴 화면의 상단에는 칠여래가 합장을 한 채 나란히 서 있으며, 좌측에는 아미타삼존 일행이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모습과 왕후장상, 선왕선후, 북채를 든 뇌신, 우측에는 지장삼존[지장보살 · 도명존자 · 무독귀왕]과 인로왕보살이 내영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칠여래의 아래에는 제단 좌우에 높은 기둥을 세운 후 ‘나무화신석가모니불[南無化身釋迦牟尼佛]’, ‘나무법신비로자나불[南無法身毘盧舍那佛]’, ‘나무보신노사나불[南無報身盧舍那佛]’의 삼신불번(三身佛幡)을 늘어뜨리고 갖가지 꽃과 공양물을 가득 차려놓았으며, 주상전하, 왕비전하, 세자전하, 시방삼세의 위패를 모셨다. 제단에 이르는 돌계단 아래 좌우의 커다란 화병 안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모란이 가득 꽂혀있어 화려하게 치장된 당시 제단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제단 우측에는 천막 안에서 스님들이 나란히 모여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작법승(作法僧)들이 큰 북과 바라 등을 두드리며 의식을 집전하는 모습, 승무를 추는 모습, 커다란 공양물을 머리에 이거나 들고서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표현되었다.
화면의 하단 중앙에는 서로 마주보고 꿇어앉은 한 쌍의 아귀(餓鬼)가 크게 묘사되었다.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입과 가는 목, 불룩한 배 등 아귀의 특징을 잘 묘사하였으나 얼굴 표정 등에서 다소 희화화(戱畵化)된 느낌을 준다.
아귀의 좌우로는 산악과 수목으로 분리된 공간 속에 세속의 다양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한복을 입은 남녀들이 춤을 추거나 싸우는 장면, 대장간에서 일하는 장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광대가 거꾸로 서는 묘기를 부리고 초랭이가 부채를 들고 춤추는 장면, 죽방울 놀이 하는 장면, 서당 모습, 밭가는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음식을 먹거나 술을 받는 모습, 물건을 파는 모습 등은 당시 장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여기에 표현된 풍속 장면들은 주로 장례나 영가천도 등의 행사와 관련된 장면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수륙화(水陸畵)로서의 감로도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화면 우측으로는 뇌신(雷神)을 표현한 화염 아래로 우산을 쓴 인물과 뱀에게 쫓기는 장면 등 『법화경(法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구제난(救濟難) 장면과 농사짓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병자를 진료하는 모습, 소고 등을 갖고 무리지어 노는 모습, 일하러 가거나 장터에 가는 모습 등의 다양한 일상 생활 장면이 표현되었다. 더불어 죄인들을 벌하는 모습, 전쟁 장면 등도 묘사되었다.
전체적으로 적색과 녹색 위주의 채색으로 인한 보색 효과와 양청색이 주는 강조,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는 생기있는 분위기로 일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황색, 백색, 청색 등이 어우러져 화려한 색감을 보여준다.
19세기 중엽 이후 서울 ·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감로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성 당시 수륙재 같은 불교의 재의식 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의 생활상 등을 충실히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감로도는 현재 수락산 감로도(1868년)를 비롯하여 경국사 감로도(1887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봉은사 감로도(1892년), 청룡사 감로도(1898년), 보광사 감로도(1898년) 등이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인물들의 표현과 생동감있는 자세 등의 연출로 인해 화면 전체에 활기가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30여 명에 이르는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된 불화로서 당시 왕실에서의 불화 발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