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9.2㎝, 가로 92.4㎝. 임득의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자방(子房)이고 본관은 평택이다.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 청난공신(淸難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충청수우후(忠淸水虞侯)와 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임득의 초상」은 1632년(인조 10)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에 건립한 정충사(靖忠祠)에 봉안된 채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비단 바탕이 부분적으로 탈락되었고 안료도 일부 변색되었으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현재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이다.
「임득의 초상」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교의좌상(交椅坐像)이다. 사모의 모정이 높은 편이고 양 날개의 문양은 운보문(雲寶文)이다. 단호(單虎) 흉배 아래 삽은대(鈒銀帶)를 착용했고, 공수자세의 양 소매 끝에 흰색 포 자락이 드러나 있다. 양 다리를 넓게 벌려 앉은 자세이며 트인 단령 사이로 왼쪽 무릎이 불쑥 솟아 있다. 바닥에 화려한 문양의 채전(彩氈)이 깔렸고, 흑피혜(黑皮鞋)를 신은 양발이 족좌대 위에 팔자(八字) 모양으로 올려져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17세기 초 공신화상의 특징이지만, 세부 표현에서 1604년 청난공신 책록 당시에 제작된 원본으로 보기 어려운 요소도 확인된다.
얼굴의 윤곽과 이목구비의 형태, 눈과 입 주변의 주름살을 필선으로 묘사했고, 이마와 광대뼈, 귓바퀴의 오목한 부위를 선염하여 농담의 변화를 주어 입체감을 살렸다. 눈동자에는 중앙의 동공 옆에 검은 점이 하나씩 더 찍혀 있는데,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다. 또한 단령의 문양이 칠보가 섞인 운보문(雲寶文)이고, 굵고 가는 선묘를 번갈아 사용하여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흉배는 붉은 바탕의 금색 뇌문(雷文) 위에 민화풍 호랑이와 오색구름으로 장식되었는데, 해치(獬豸)나 호표(虎豹)가 아닌 호랑이 흉배는 18세기 이후의 무관 흉배여서 17세기 초의 도상(圖像)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청난공신으로 녹훈되면서 제작된 공신도상을 후대에 모사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임득의 초상」은 1604년에 청난공신으로 책록된 임득의의 공신도상으로서 제작 배경이 분명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17세기 초에 정립된 공신도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세부에서 후대의 특징도 확인되어 이모본(移摹本)이라 생각된다. 설사 원본이 아니라 해도 상대적으로 수량이 적은 무신 초상이라는 점, 아직 다른 본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