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통영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인물
  • 대표 상훈건국훈장 애국장
  • 사망 연도1920년 3월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903년 7월 18일
  • 출생지부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0년
  • 이정은 ((사)
  • 최종수정 2022년 10월 2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순이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 17세 여성으로, 경상남도 통영에서 유치원 보모로 일하였다. 통영 청년 18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할 때 동료 문복숙과 태극기를 만들다가 1919년 3월 14일 새벽에 체포되었다.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19년 9월 6일 가출옥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6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통영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나 17세 때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大和町)에 있는 유치원에서 보모로 일하였다.

주요 활동

1919년 3월 13일 통영의 만세시위를 위하여 진평헌(陳平軒) 등 청년 18명이 모였다. 진평헌이 격문 「동포에게 격하노라!」를 작성하고, 양재원(梁在元) · 배익조(裵益祚)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그날 밤 통영면사무소의 등사판을 가지고 4㎞ 거리의 산양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 등사판 2대로 밤을 새워 격문 1,200매를 인쇄하였다.

김순이, 문복숙(文福淑) 등 유치원에서 함께 일하던 보모 여성들은 밤을 새워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남녀 청년들은 3월 14일 새벽 형사대의 급습으로 각각 검거되었다. 김순이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19년 9월 6일 가출옥하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출옥 6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3 · 1운동시 피살자 명부」(국가기록원 소장, 1951)

  • 단행본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 신문 · 잡지

  • - 『매일신보』(1919. 4. 7.)

  • 인터넷 자료

  •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기타 자료

  • - 「허기엽 증인신문조서」(반민특위조사기록, 1949. 5. 11.)

주석

  • 주1

    :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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