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통영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3년 7월 18일
사망 연도
1920년 3월
출생지
부산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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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순이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 17세 여성으로, 경상남도 통영에서 유치원 보모로 일하였다. 통영 청년 18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할 때 동료 문복숙과 태극기를 만들다가 1919년 3월 14일 새벽에 체포되었다.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19년 9월 6일 가출옥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6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통영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나 17세 때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大和町)에 있는 유치원에서 보모로 일하였다.

주요 활동

1919년 3월 13일 통영의 만세시위를 위하여 진평헌(陳平軒) 등 청년 18명이 모였다. 진평헌이 격문 「동포에게 격하노라!」를 작성하고, 양재원(梁在元) · 배익조(裵益祚)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그날 밤 통영면사무소의 등사판을 가지고 4㎞ 거리의 산양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 등사판 2대로 밤을 새워 격문 1,200매를 인쇄하였다.

김순이, 문복숙(文福淑) 등 유치원에서 함께 일하던 보모 여성들은 밤을 새워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남녀 청년들은 3월 14일 새벽 형사대의 급습으로 각각 검거되었다. 김순이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19년 9월 6일 가출옥하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출옥 6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3 · 1운동시 피살자 명부」(국가기록원 소장, 1951)

단행본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신문 · 잡지

『매일신보』(1919. 4. 7.)

인터넷 자료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기타 자료

「허기엽 증인신문조서」(반민특위조사기록, 1949. 5. 11.)
집필자
이정은((사)3.1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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