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 17세 여성으로, 경상남도 통영에서 유치원 보모로 일하였다. 통영 청년 18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할 때 동료 문복숙과 태극기를 만들다가 1919년 3월 14일 새벽에 체포되었다.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19년 9월 6일 가출옥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6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나 17세 때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大和町)에 있는 유치원에서 보모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13일 통영의 만세시위를 위하여 진평헌(陳平軒) 등 청년 18명이 모였다. 진평헌이 격문 「동포에게 격하노라!」를 작성하고, 양재원(梁在元) · 배익조(裵益祚)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그날 밤 통영면사무소의 등사판을 가지고 4㎞ 거리의 산양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 등사판 2대로 밤을 새워 격문 1,200매를 인쇄하였다.
김순이, 문복숙(文福淑) 등 유치원에서 함께 일하던 보모 여성들은 밤을 새워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남녀 청년들은 3월 14일 새벽 형사대의 급습으로 각각 검거되었다. 김순이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부산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건강 악화로 1919년 9월 6일 가출옥하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출옥 6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