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시장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주요 활동
박권세는 산청군 신등면 출신이다. 신등면에서는 김상준(金相峻)이 고종 인산(因山)에 참가하고 돌아와 부친 김영숙(金永淑) 등과 3월 19일 신등면 단계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중 헌병들의 기습으로 연행되었다. 한편, 정태륜(鄭泰侖) 등 3인은 3월 18일 밤 「통고문」, 「조선독립선언서」 등의 문서를 신등면과 도산면, 단성면 헌병 분견소 부근의 주요 지점에 붙여 분기(奮起)를 촉구하였다.
3월 20일 신등면 단계리 시장에서 600~7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약 30리[약 11.8㎞] 거리의 단성면 성내리로 와서 전날 구금한 김상준 등 5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밤 늦도록 대치하였다. 진주와 거창에서 급파된 일본 지원군에 의해 주도자 29명이 검거되고 해산되었다.
3월 21일은 성내리 장날이었다. 박권세는 아침 일찍 마을 주민들을 독려하여 시장으로 나왔다. 신등면과 성내면 주민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헌병주재소 앞에서 전날 검거된 정태륜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과 대치하였다. 헌병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여 11명이 순국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박권세는 이때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3 · 1운동시 피살자명부」(국가기록원 소장, 1953)
단행본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6(국가보훈처, 197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국가보훈처, 197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판결문
- 「판결문」(고등법원, 1919. 7. 17.)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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