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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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배움을 권장하는 관직.
이칭
이칭
시학관(侍學官) , 시학관(視學官), 장학관(奬學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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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권학관은 고려시대 이후 배움[학(學)]을 권장하는 관직으로,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태자, 왕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삼공제도의 일환으로 시학관(侍學官)을 두었고, 지방의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학장(學長)이나 교도(敎導)를 지방에 보냈다. 갑오개혁 이후 학부의 시학관(視學官), 대한민국에서의 장학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의
고려시대 이후 배움을 권장하는 관직.
변천 사항

고려조선시대에는 태자 교육, 왕자 교육을 위한 시학관(侍學官)을 두었고, 지방의 교육을 장려하기 위하여 학장(學長)이나 교도(敎導) 등 권학관을 지방에 내보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학부에 시학관(視學官)을 두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시학관 이외에 새롭게 교학관(敎學官) 제도를 신설하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시학관을 장학관(獎學官)으로 바꾸고, 직종과 직급에 따라 장학사와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등 권학관의 명칭도 다양화되었다.

의의 및 평가

대개 전통시대에는 국가가 학문을 권장하고 예절을 익히는 것으로 교화를 일으키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였기에, 권학에 힘쓰고자 하였다. 조선 초기에 권근의 『향학사목(鄕學事目)』은 향교를 강화하기 위하여 사립학교의 사유(師儒)와 유생을 강제로 향교로 옮기는 일이 없도록 감사수령이 유념해서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관학과 사학을 모두 존중하던 교육적 전통이 일제강점기에는 시학관이나 독학관(督學官) 등의 명칭을 통해 사학에 대한 감독과 통제의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이를 장학관으로 바꾸었고, 최근에는 관 주도의 교육보다는 민간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입장으로 권학의 역할이 변화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웹페이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none)

기타 자료

『동아일보』(193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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