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전통시대에는 국가가 학문을 권장하고 예절을 익히는 것으로 교화를 일으키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였기에, 권학에 힘쓰고자 하였다. 조선 초기에 권근의 『향학사목(鄕學事目)』은 향교를 강화하기 위하여 사립학교의 사유(師儒)와 유생을 강제로 향교로 옮기는 일이 없도록 감사와 수령이 유념해서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관학과 사학을 모두 존중하던 교육적 전통이 일제강점기에는 시학관이나 독학관(督學官) 등의 명칭을 통해 사학에 대한 감독과 통제의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이를 장학관으로 바꾸었고, 최근에는 관 주도의 교육보다는 민간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입장으로 권학의 역할이 변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