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이후 글방 학생, 보부상, 동학 교구 등의 무리인 접(接)의 우두머리.
내용
변천 사항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갑오년(1894)에 동학도들이 서로를 접장이라 불렀는데, 세속에서 접장은 문사(文士)를 일컫는 말'이라 하였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당시 한 무리를 이끄는 접(接)의 우두머리를 특별히 접주(接主)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접의 규모는 대략 60~70명으로, 접원(接員)이 백 호를 넘으면 두 접으로 나누는 것이 상례라 하였다. 동학농민군은 노소 귀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서로 존대하는 평등의 용어로 ‘접장’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오늘날 국궁 활터에서는 한 순 5발의 화살을 모두 과녁에 맞히는 몰기를 한 사람을 대접해서 ‘접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피정만, 『20세기 서당교육연구』(도서출판 하우, 2010)
논문
- 최윤용, 「서당의 교육방법과 현대적 의의」(『한문고전연구』 17-1, 한국한문고전학회, 2008)
- 이항재, 「충남지역 서당교육에 관한 연구(I)」(『한국교육사학』 18, 한국교육사학회, 1996)
- 표영삼, 「접(接) · 포(包)조직과 남 · 북접의 실상」(『한국학논집』 25,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4)
웹페이지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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