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교육학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과정을 보면, 영국 스펜서(Spencer, H.)의 지육-덕육-체육의 삼육론과 독일 헤르바르트(Herbart, J. F.)의 관리-교수-훈련[훈육]의 교육론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한성사범학교 교재로 추정되는 기무라 도모지[木村知治]의 『신찬교육학』(1895)은 삼육론의 관점으로 편찬된 것인데 반해, 1907년에 간행된 윤태영 역술의 『사범교육학』과 최광옥 역술의 『교육학』, 그리고 1908년에 간행된 유옥겸 찬술의 『 간명교육학』은 헤르바르트 교육론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즉, 교육의 방법으로 윤태영은 교수-훈련을, 최광옥은 교수-훈련-체육을 나열하였고, 유옥겸은 교수-훈육-양호를 제시하는 등 이 시기 훈련과 훈육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헤르바르트는 훈육[훈련]을 통해 ‘도덕적 품성 도야’를 지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훈육이라는 용어는 군사 분야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즉, 「무관학교관제」(1896. 1. 11. 칙령 제2호) 제8조에 “교관은 교두의 명을 받아 훈육 및 학술과의 교수를 담임하며 학도의 행위를 감시함”이라 하여, 학생의 ‘행위 감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후 ‘학교훈육’[『조선총독부 관보』, 1914. 6. 10.], ‘자녀훈육’ 『동아일보』, 1924. 10. 13.), ‘아동훈육’, ‘불량아동훈육’, ‘점원훈육’ 등 훈육(discipline)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가정교육과 사회교육 등 다양한 교육의 장에서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르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학교 현장에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남아있던 훈육 방법은 순종하는 집단정신을 강조하던 [경성사범학교의 교사양성 과정의 부정적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부 교육학자들은 일방적인 규칙, 억압, 처벌을 중시하는 훈육과 생활지도를 구분하기도 하였다. 특히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확산되면서, 개인훈육론은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적 훈육론으로 전환되었다. 즉, 1942년 10월 1일 제령(制令) 제33호로 반포된 「조선청년특별연성령(朝鮮靑年特別鍊成令), 훈육요지급요목(訓育要旨及要目)」(『文敎の朝鮮』, 205호)이나 훈육관이라는 용어를 보면, 훈육이 헤르바르트가 원래 의도하던 도덕적 품성 도야보다는 군사적 훈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