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李潤善, 1826-?)이 1840년(헌종 6)부터 1869년(고종 6)까지 30여 년 간 쓴 일기를 그의 아들 이진영이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저자는 서리 이기혁(李基赫)의 아들로서, 1844년에 호조 봉상색(戶曹捧上色)에 기용된 이래 1869년까지 호조 서리로 재직하였다. 또 철종대에 우의정을 역임한 박영원(朴永元, 1791∼1854)의 겸인(傔人: 양반이나 부호의 집에서 잡무를 맡아 보던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정치권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부친 이기혁은 1862년에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를 가자(加資: 근무 성적, 공로, 왕명 등에 근거하여 관품(官品)을 올려 주거나 수여하는 승진제도)받았다.
이윤선의 아들 이진영이 부친의 일기를 정리하여 1880년(고종 17)에 편찬하였다.
4권 4책, 필사본, 책 크기 세로 35㎝, 가로 22㎝이다.
권1은 1840년부터 1851년(철종 2)까지, 권2는 1852년부터 1861년(철종 12)까지, 권3은 1862년부터 1865년(고종 2)까지, 권4는 1866년부터 1869년 9월 28일까지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일기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저자의 개인사 및 가정사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이윤선의 개인적 이력, 집안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 부친 이기혁의 활동, 일가의 사람들이 서리직으로 진출하여 직무를 수행한 일, 주공대감가(主公大監家) 및 여러 세도가들과의 관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서 중에는 이윤선이 일상적으로 접촉했던 친족들이나 주인과 겸임[主傔] 관계를 맺고 섬겼던 주공가(主公家)의 인물들과 관련된 내용, 부친 이기혁의 서리 활동과 관계되는 사항 등의 상당수가 삭제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자신들의 집안이 서리 가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를 꺼려했던 후손들이 의도적으로 내용을 삭제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둘째는 그가 호조 서리 등으로 근무하면서 접했던 국정(國政) 동향과 관련된 내용이다. 의정부와 육조, 승정원(承政院) 및 여러 군영(軍營) 등에서 시행된 인사(人事) 행정, 과거 시행 상황과 급제자의 명단, 사신(使臣)의 연행(燕行) 관계 등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1862~1869년의 일기인 권3과 권4에는 임술민란(壬戌民亂)의 진행 상황과 그에 대한 정부의 대처, 고종 즉위와 함께 익종[翼宗: 조선 후기의 추존왕인 효명세자(孝明世子)]의 비(妃)인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한 사실, 천주교도의 처형 사실, 이양선(異樣船)의 출몰 및 서양세력의 침투에 민심의 동요와 정부의 수습 과정 등이 서술되어 있다. 또, 대원군(大院君) 집정기의 원납전(願納錢: 경복궁 중수를 위해서 거두어들인 기부금) 징수와 주전(鑄錢) 등 재정 운용에 관한 사항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호조 서리였던 이윤선과 직무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서리의 생활방식에 대한 정보를 줄 뿐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 및 사회 경제적 변동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