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정조(正祖)가 경(經)·사(史)·자(子)·집(集)의 여러 서적에서 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판단한 내용들을 선별하고 중요 구절에 비점(批點)과 권점(圈點)을 가하여 편집한 책이다.
1797년(정조 21) 10월부터 1798년 10월 사이에 편찬되었다. 1797년 10∼12월에 가장 먼저 집부(集部)의 『팔자수권(八子手圈)』을, 1798년 4월 12∼21일에 집부의 『육고수권(陸稿手圈)』을 편찬했다. 이어 1798년 4∼10월 중 57일 동안 자부(子部)의 『오자수권(五子手圈)』을 편찬했고, 같은 해 6∼10월 중 20일 동안 경부(經部)의 『삼례수권(三禮手圈)』을 편찬했다. 그리고 1798년 9월 25∼29일과 10월 2∼26일에 마지막으로 사부(史部)인 『양경수권(兩京手圈)』을 편찬했다. 이상 『사부수권』 전체를 편찬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187일이며, 결과물은 13책의 필사본으로 편집되었다. 그리고 정조 사후 1801년(순조 1)에 25권 12책으로 정리되어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현재 규장각에는 두 종이 소장되어 있다. 먼저, 13책으로 된 필사본(1797년, 규 51-v.1-13)은 책 크기가 세로 36.9㎝, 가로 23.4㎝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 크기는 세로 24.4㎝, 가로 17.1㎝이다. 본문은 10행(行) 20자(字)이고, 판심(版心)은 상화문어미(上花紋魚尾)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25권 12책으로 된 목판본(1801년, 규 1787 등)은 책 크기가 세로 32.4㎝, 가로 20.2㎝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 크기는 세로 21㎝ 가로 14.5㎝이다. 본문은 10행(行) 20자(字)이고 판심(版心)은 상흑어미(上黑魚尾)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사부수권』 전체의 목차인 「어정사부수권총목(御定四部手圈總目)」과 칠언배율(七言排律)로 된 「정종대왕어제시(正宗大王御製詩)」가 추가되어 있다.
필사본을 중심으로 서술하면, 먼저 경부의 『삼례수권』에서는 『의례(儀禮)』·『주례(周禮)』·『예기(禮記)』를 대상으로 하였고, 사부의 『양경수권』은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를 대상으로 했다. 또, 자부의 『오자수권』은 송대(宋代)에 성리학을 정립한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주희(朱熹) 등 5인의 저술을 다룬 것이며, 집부의 『육고수권』과 『팔자수권』은 각각 당(唐)나라의 관료 육지(陸贄)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8인의 저술 중에서 선별하여 편집한 것이다.
각 수권(手圈)마다 첫 머리에 해당 수권의 편찬 과정을 표로 정리한 「과정일표(課程日表)」가 실려 있어서 전체적인 편찬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정조가 각 수권의 교정을 담당한 학사들에게 내린 글이 있는데, 여기에는 정조가 각 수권을 편찬한 취지가 밝혀져 있다.
그리고 각 수권의 마지막 부분에는 원임(原任) 규장각 제학(提學)들이 지은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삼례수권』의 발문은 김종수(金鍾秀), 『앙경수권』의 발문은 채제공(蔡濟恭), 『오자수권』의 발문은 김희(金喜), 『육고수권』의 발문은 이병모(李秉模)가 썼으며, 『팔자수권』의 발문은 당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었던 홍양호(洪良浩)가 작성하였다.
정조가 『사부수권』의 대상 서적을 정하고 중요 구절을 선별한 기준과 내용을 통해 정조의 학문 경향 및 그가 지향했던 조선 학계의 이상적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