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처음 확인되었고, 1994년에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04년에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에 의해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012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4차례 축성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내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에 의해 6세기 중후엽 무렵에 축조된 석축 성벽이다. 축성법은 흙을 다져서 토축부를 먼저 조성한 후 앞면에 석축을 쌓았으며, 성돌 사이에 점토를 넣어 내구력을 강화하였다.
이후 통일신라기에 2차례 더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7세기 중엽 이후 신라는 성벽을 보수하면서 다듬은 장방형 성돌을 바른층쌓기로 보다 견고하게 축조하였다. 9세기 이후에 기존 성벽에 보축 성벽을 덧붙여 보강하였다. 이러한 수개축 과정을 통해 신라가 북쪽 임진강 일대 방어에서 덕진산성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사용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다시 이용하였는데, 광해군 대에는 내성벽을 보수하고 또 강기슭까지 토축성벽으로 외성을 새로 축조하였다. 성벽 외측에서는 목책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확인되는데, 축성이 치밀하지 못하여 급하게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성벽에는 치(雉)가 확인되고, 성 내부에서 문지 · 장대지(將臺址) · 덕진단(德津壇) 등 건물지, 집수지 등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다양한 기와편이 다량 출토되었다.
임진강변 해발 85m 산의 능선에 자리잡고 있어 주변 지역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고 외성 약 1.2㎞, 내성 약 660m, 전체면적 17만 1835㎡ 규모이다. 내성은 최고봉인 해발 85m와 6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 능선을 따라 돌며 표주박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외성과 내성 사이에는 곡저부가 형성되어 있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강변으로 연결되는 곳은 배를 접안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강 북안에 위치한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 등 여러 고구려 성곽과 함께 임진강 일대 고구려 방어체계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축성 기술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2017년 1월 1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