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표조사에서 삼국시대 유물산포지로 알려지고, 2015년 9월 발굴조사 과정에서 성곽 유적임이 확인되어 이후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나, 2020년 현재 산성 일부 구역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발굴조사 결과 2차례의 성벽 축조가 확인되었다. 백제에 의해 축조된 초축 성벽은 구릉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굴토한 뒤 성토하여 토축 성벽을 축조하였고, 상부에는 여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목책을 설치하였다.
개축 성벽은 초축 성벽의 상부를 정지한 후 내외 이중으로 목책을 설치하고, 바깥 목책에 점토를 두텁게 바른 석축시설을 덧대고 외부에 성토하여 목책을 보강하였다. 이러한 목책 구조는 세종 남성골산성과 연천 무등리2보루 등의 성벽구조와 유사하여 고구려에 의해 축조되었음이 확인된다.
유물로는 세발토기, 굽다리접시, 시루 등 백제 한성도읍기의 토기를 비롯하여 뚜껑, 손잡이 달린 항아리, 짧은 목 항아리, 사발 등 고구려 토기 및 컵 모양의 가야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성곽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볼 때 4~5세기 사이에 백제가 토축 성벽을 축조하여 사용하였고, 고구려가 남진하여 이 지역을 차지한 후, 토축 성벽 위에 목책 성벽을 재축조하여 사용하였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안성시 일대로 비정되는 『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보이는 고구려 나혜홀(奈兮忽)의 치소일 가능성이 있다.
진천 대모산성[충청북도 기념물], 세종 부강 남성골산성[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대전 월평동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등과 함께 한강 이남 지역에서 고구려의 남진 경로 및 영역 지배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며, 또한 삼국시대 목책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드문 유적이다. 2016년 10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