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연천 당포성은 연천 호로고루, 연천 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 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하천(國境河川)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연천 당포성은 임진강의 당개나루터 부근에서 합류하는 지천과 임진강으로 인하여 형성된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斷崖) 위에 축성되어 있으며, 입지조건과 평면형태 및 축성방법은 호로고루 및 은대리성과 매우 유사하다. 당포성은 파주의 어유지리 방면에서 마전을 거쳐 삭령에서 토산을 거쳐 신계 방면으로 가튼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는데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곳은 임진강을 건너 양주 방면으로 남하하는 적을 방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위치이므로 나당 전쟁 이후 신라가 진출하여 당포성의 외벽에 석축벽을 덧붙여서 보강하고 계속 활용하였다.
당포성에 관하여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이 없으며 유일하게 미수(眉叟)허목(許穆)의 기언별집(記言別集)에 ‘마전 앞의 언덕 강벽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에 총사가 있고, 그 앞의 나루를 당개라 하는데 큰물이 흘러 나룻길로 통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포성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 단애를 이루지 않은 동쪽에만 석축성벽을 쌓아 막았다. 동성벽은 길이 50m, 잔존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며 전체 둘레는 450m 정도로 호로고루보다 약간 큰 규모이다. 당포성의 동벽은 내외성의 2중성으로 구축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조사결과 외성의 토루는 후대에 구축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포성의 동벽은 남단부가 석축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단면조사 결과 호로고루와 마찬가지로 기저부와 중심부는 판축으로 구축되었으며, 판축토(版築土) 위에 체성벽이 올라가고 체성벽 바깥쪽에 암반층에서부터 보축성벽을 쌓아서 체성벽의 중간부분까지 이르도록 하였으며 보축성벽의 바깥쪽에는 보축성벽의 중간부분까지 다시 점토로 보강을 한 구조이다. 고구려 보축성벽의 바깥쪽에는 호로고루와 마찬가지로 7세기 후반 이 지역을 점유한 신라가 덧붙여 쌓은 성벽이 확인된다.
체성벽의 외면에는 약 2m 간격으로 수직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하단부에는 확돌이 놓여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수직홈은 고구려성인 평양의 대성산성의 중간벽과 호로고루의 체성벽 안쪽 내벽에서도 확인되었으며, 기둥홈이 있는 성벽은 면석이 정연하게 다듬지 않은 것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석축성벽을 효율적으로 쌓기 위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돌로 채워넣을 수 있었던 구조로 추정된다. 당포성도 기둥홈이 노출된 성벽 외면에 체성벽이 덧붙여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출토유물은 선조문과 격자문이 타날된 회색의 신라기와와 경질토기편이 주류를 이루지만 고구려토기편과 기와편도 확인된다. 고구려기와편은 대부분 적갈색을 띠고 있으며 여러 종류의 문양이 확인되는 호로고루와 달리 승문(繩文)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당포성의 축성기법은 토성과 석성의 축성기법을 결합한 구조로 고구려 국내성과 평양의 대성산성의 축성기법과 동일한 기술적 계통성을 보여주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평양 대성산성과 호로고루처럼 체성벽에서 기둥홈이 확인되었으며, 기둥홈이 있는 성벽이 정연하게 구축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체성벽이 덧붙여져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당포성은 호로고루와 은대리성과 함께 강안의 단애 위에 구축된 삼각형의 강안평지성으로서 구조적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이다. 당포성은 특히 당개나루를 방어하기 위하여 구축된 성으로서 호로고루와 함께 고구려의 국경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