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둘레 약 685m. 199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안산(해발 146.8m)의 정상부에 축조되었으며, 동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의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성안에는 수안산 봉수가 있었는데, 봉수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쪽으로 김포현 백석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강화부 대모성산과 응한다”고 하였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수안산성에 대하여 “대곶면 율촌리에 있으며, 낮은 토루 약 4백칸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문화유적총람』에는 “표고 140m의 수안산 정상부에 석축으로 쌓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으로 석축은 높이 5∼10m 의 험준한 요새를 구축하였다. 일부 무너진 곳을 보면 석축의 두께가 1∼2m이며, 성내부의 면적은 약 3천평이다.
삼국시대 토기편·와편 등이 많이 출토된다. 서해안 방어의 요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며 후대 조선조에는 봉화대로도 사용된 듯하다.”고 하였다. 이 성은 1985년 경기도 백제문화유적 조사 때 조사된 바 있으며, 이후 1995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본격적인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성벽과 내부는 1985년까지 군 부대가 주둔하여 참호와 군사용 기지를 설치하면서 많은 부분이 인위적으로 파괴된 상태이지만 남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잔존상태가 양호한 부분의 성벽 높이는 2∼3m 정도로서, 크기가 일정치 않은 장방형의 할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현재 10단 정도가 남아 있다.
성안의 건물터는 현재 4곳이 남아 있는데 주변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성안에서 우물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고, 수안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3개나 되는 만큼 수원의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봉수대터는 비교적 뚜렷한 흔적을 알 수 있었지만 공동묘지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부분이어서 많이 교란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삼국시대의 토기편과 와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기편은 단각고배류와 인화문토기, 합·완 등이 주류를 이루며, 단경호와 시루 등도 발견된다. 기와류는 격자문·어골문·선문·복합문의 순으로 수습되는데, 대체로 신라∼통일신라기의 유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발견되는 유물이나 축성방법으로 보아 이 성은 신라 진흥왕대에 한강하류 지역을 장악하고 축성한 성이라고 판단되며, 통일신라기까지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으로 기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