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채화(綵花)는 궁궐 안의 큰 행사나 중국 사신의 연향, 제사 등 국가적인 행사뿐 아니라, 사대부가의 연회 혹은 문인의 완상용, 민가에서도 다양하고 폭넓게 제작되었다. 그 중 '궁중채화'는 궁중 행사에서 사용된 채화를 말한다. 1795년(정조 19) 『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의하면 행사를 위해 만든 꽃이 1만 1919개이며 비용은 990냥 8전 7분였다고 하고, 금은노포화(金銀露布花)를 금지하는 기록 등은 당시 조화(造花) 풍속의 성행을 전한다.
채화를 만드는 재료와 형태는 『 의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의 의궤인 1643년(인조 21) 『영접도감연향색의궤(迎接都監宴享色儀軌)』의 상차림 설명에서, 내자시나 예빈시에서 담당한 상화(床花) 제작에 갖가지 색상의 종이와 비단, 금은 장식과 석채 등의 사용을 볼 수 있다.
궁중채화의 형태는 『원행을묘정리의궤』, 『기축진찬의궤』(1829년) 등에서 도식(圖式)으로 볼 수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 채화 종류는 어잠사권화(御簪絲圈花), 수공화(首拱花), 준화(樽花), 상화(床花)로 구분하였고, 세분하여 다양한 꽃 종류를 나열하였다.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잔치에 채화가 장식되었음은 『 고려사』 기록에서부터 나타난다.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현재 황수로가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황수로는 1965년 미국공보원(USIS)에서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덕수궁과 부산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서 전시회를 하였다.
황수로 보유자는 융사로 만든 홍도화(紅桃花)와 초충, 밀랍화 등 선대(先代)부터 전하는 채화를 소장하고 있다. 꽃 제작에 쓰는 도구로는 각종 인두와 가위, 칼, 조각도, 대통과 누름통, 밀랍, 석채가루와 붓 등을 사용한다. 비단을 자연 염색하고 풀을 먹여 쓰며, 자연에서 직접 얻은 꽃을 눌러 말려 그 모양을 떠내어 본으로 사용한다.
비단을 재단하여 인두로 눌러 모양을 잡고, 노루털이나 모시털을 풀어 염색하고 꽃술에 꽃가루를 발라 만들고, 꽃잎을 겹치고, 자연스러운 잎맥을 인두로 눌러 새긴 잎사귀를 붙여 완성하는 방식으로 꽃 제작을 한다. 보유자는 순조와 고종의 진찬의궤, 진연의궤 등을 바탕으로 재현에 힘쓰고 있다.
그가 작업한 약 3m에 달하는 준화는 홍벽도화로 만들고 비취로 된 나비 등을 엮으며, 2천여 송이의 꽃을 두 개의 용준에 꽂는데, 채화 중 가장 풍성하고 화려함을 갖춘 꽃장식이다. 상화에는 수파련 외 갖가지 종류의 상화를 제작하는데, 밀랍을 쓰거나 밀랍을 발라 윤기를 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과자화(瓜子花), 시자화(柿子花), 가자화(茄子花), 포도화(葡萄花) 지당판(池塘板), 화안(花案) 등 의궤 도식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