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정씨(草溪鄭氏)의 시조 정배걸(鄭倍傑)과 그의 아들 정문(鄭文, ?∼1106)을 향사하기 위해 1799년(정조 23)에 건립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되었으며, 1861년(철종 12)과 1981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3년 12월 27일에 서원 건물 4동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초계정씨의 관향인 초계지역(현 합천군 소속)에 시조 정배걸과 정문 부자를 향사하기 위해 정배걸이 강학하던 곳에 세워진 옥전재(玉田齋)를 기초로 하여 1799년에 건립되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직전에 동래부사가 자신이 찬한 정간공(정문의 시호) 신도비문을 목형으로 세우고 비각으로 둔갑시켜 훼철을 모면하였다고 전한다.
정배걸은 고려 전기 지공거(知貢擧) 곽원(郭元, ?∼1029)의 문하에서 장원급제하고 이후 중앙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고려시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 하나인 ‘홍문공도(弘文公徒)’ 혹은 ‘웅천도(熊川徒)’라고 불리는 사숙(私塾)을 운영하였다.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고 홍문(弘文)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문은 정배걸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한 뒤 문종 때 비서랑(秘書郞), 선종 때 직한림(直翰林) 겸 사문조교(四門助敎)에 발탁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는데, 사후에 특진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射參知政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서원의 구조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로 구성하고 양옆은 온돌방으로 된 협실을 두었다. 묘우인 광덕사(光德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이다. 매년 음력 3월 1일과 10월 1일에 춘추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관향을 계기로 설립된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이다. 초계정씨의 관향인 초계지역에 설립하여 시조를 모신 문중서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