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은 16세기에 건립된 원천정(原泉亭)에서 출발하였다. 원천정은 1587년(선조 20)에 전팔고(全八顧, 1540∼1612)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경상도 거창에 세운 강학 공간이다. 임진왜란 때는 전팔고가 거창의 의병을 도우면서 의병의 비밀 모의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전팔고 사후 1711년(숙종 37)에 원천정 건물 뒤에 ‘용천사(龍泉祠)’라는 사우를 지어 전팔고의 위패를 봉안한 뒤 용천서원(龍泉書院)이라 개칭하였다. 『사원일람(祠院一覽)』에 따르면, 용천사에는 전팔고 외에 형사보(邢士保), 유자방(柳子房), 이계준(李繼俊), 전팔급(全八及), 서숙(徐䎘)을 배향하였다. 1997년 12월 31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전팔고는 자가 경필(景弼), 호는 원천(原泉), 본관은 죽산이다. 1540년에 전확(全擴)의 장자로 태어나 거창 가조면 원천리에 거주하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1587년에 원천정을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임진왜란 때 거창의 의병을 도왔고, 명군(明軍)이 가조면에 머무를 때 적극적으로 도운 공(功)으로 명 황제가 첨지벼슬을, 선조(宣祖)가 대사헌을 내렸지만 사양하였다. 문집으로 『원천선생일고(原泉先生逸稿)』가 있다.
원천정 입구에는 용천서원이라는 표석이 서 있고, 원천정 건물을 돌아서 뒤로 가면 그곳에는 용천사(龍泉祠)라는 사당이 있다. 원천정 뜰에는 전팔고의 신도비인 ‘사헌부대사헌원천전선생신도비(司憲府大司憲原泉全先生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이휘령(李彙寧)이 지은 것이다.
원천정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왼쪽으로 마루 2칸, 오른쪽으로 방 2칸을 들였고, 방 앞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1684년에 후손들이 중창한 이후 여러 번 중수한 것이다. 정자 안에는 정자 건립에 관한 기문(記文)과 상량문(上樑文)이 걸려 있다.
1842년(헌종 8) 용천서원에서 전팔고의 문집 『원천선생일고』를 간행하였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전남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서문인 「원천전공일고서(原泉全公逸稿序)」는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이, 발문인 「원천일고발(原泉逸稿跋)」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지었다. 이는 『정재집(定齋集)』과 『응와집(凝窩集)』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