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1923년 미국인 기업가 앨버트 테일러가 건립한 서양식 주택.
건립 경위
집의 별칭인 딜쿠샤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러크나우(Luknow)의 곰티(Gomti)강 유역에 폐허로 남은 인도화된 영국 바로크 건물인 딜쿠샤 코티(Dilkusha Kothi)에서 따온 말이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인데,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메리 테일러(Mary Linely Taylor)가 일찍이 인도에 머물 때 이곳을 찾아보고서는 언제가 자신의 집을 갖게 된다면 ‘즐거운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딜쿠샤라고 이름 붙일 것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는 대한제국기 및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활동한 미국의 기업인 겸 언론인이다. 아내 메리 테일러와는 일본 요코하마[横浜]에서 만나서 1917년에 인도 붐베이에서 결혼하였고, 여러 항구 도시를 거쳐서 한국에 입국하였다.
테일러 가(家)는 한국에서 운산금광과 직산금광 등에서 광산업을 크게 하였는데, 앨버트 테일러는 광산업 이외에 AP통신사의 특별통신원으로 일정 기간 활동하였다. 이때 앨버트 테일러가 3 · 1운동 과정에서 진행된 조선인들의 독립운동과 이를 제압하려는 일제의 학살행위를 알리는 데 기여를 하였다. 이후에 앨버트 테일러는 테일러상회를 열어서 자동차, 시계, 골동품 등을 취급하였다.
변천
1963년에 조경규의 재산이 국가로 넘어가면서 딜쿠샤도 국가 소유가 되었는데, 정부는 입주민을 그대로 방치하였고 입주민들은 임의로 이 건물을 증개축(增改築)하여 왔다.
2016년에 관계 당국이 딜쿠샤를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합의하였고, 복원공사를 거쳐서 2021년 역사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형태와 특징
1층의 거실은 너비가 14m이다. 2층은 1층과 마찬가지로 세 부분이며, 가운데에 베란다, 거실, 벽난로, 계단이 있고, 왼쪽에 메리의 화실과 침실, 화장실, 오른쪽에 앨버트의 서재와 침실이 있다. 지하실에는 장작과, 석탄, 포도주 등을 보관하였다.
전체적으로 벽돌과 나무를 사용하였고, 벽돌과 모르타르를 절감하기 위하여 벽돌과 벽돌 사이에 공동(空洞)을 두어 벽을 쌓은 점이 주목된다.
창호는 오르내리기 창호와 여닫이 창호, 미서기 창호가 혼재되어 있으며, 바닥은 목조 마루이다. 앨버트 테일러 가옥은 이렇게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살았던 서양인들의 생활양식을 담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서울역사박물관 편,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서울역사박물관, 2018)
- 건축사사무소 강희재 편, 『딜쿠샤 복원 및 정비 방안 마련 학술연구』(서울특별시, 201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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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창을 위아래로 열고 닫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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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앞뒤로 열고 닫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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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창짝의 하부에 롤러가 설치되어 있어 좌우로 열고 닫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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