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 양이재는 1904년 화재로 인해 1906년까지 중건한 경운궁의 중요한 전각의 하나이다. 「경운궁중건배치도」에서 양이재는 함희당과 ‘ㄱ’자 평면의 건물과 함께 수학원(修學院)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장역기철(匠役記綴)』에는 함희당과 양이재가 홍원(紅園)의 외당과 내당으로 표기되었고, 그 규모로 외당이 24칸이고 내당이 27칸으로 나와 있다. 『경운궁중건도감의궤』에는 함희당이 21칸이고, 양이재가 24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두 기록 간의 차이는 툇간이나 1/4칸을 어떻게 계산하는가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함희당과 양이재는 3칸의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920년 5월의 『매일신보』에서 이곳은 세자께서 수학하시던 곳이라고 적고 있어서, 영친왕 이은이 이 건물에서 수학했었다고 추정한다.
『장역기철』에는 "동서 온돌 12칸"이라고 적고 있어서 동서에 각각 6칸을 두었다고 짐작한다. 이건한 뒤에 바닥, 가벽, 지붕, 누각 형태의 기단 등과 같이 내부와 입면에서 많은 변형이 있었지만, 민흘림기둥을 쓴 2고주 7량가 구조의 기본골격은 유지되고 있다.
경희궁 양이재는 1905년에 건립한 경운궁의 중요한 전각이었다는 점과, 이 건물에서 왕족과 귀족들을 교육했다는 유서가 있다는 점,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바뀌면서 일어난 변화를 지금까지 전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6년 9월 19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