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앞에 분수를 갖춘 14×45m 규모의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었고, 춘당대 앞에 못을 파서 춘당지라고 부르고, 그 북쪽에 일본식 수정(水亭)을 세웠다.
건물의 설계자인 후쿠바 하야토는 1896년에 건립된 일본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도쿄[東京]의 신주쿠[新宿] 어원(御苑)에서 원예 책임자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창경궁 대온실의 형태와 구조는 신주쿠 어원의 그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후쿠바 하야토의 계획 안에는 대온실 이외에도 배양실이 그려져 있었고, 실제로 창경궁에는 부속 온실 2개가 더 있었다.
바닥은 본래 벽돌 마감이었다가, 1980년대의 시멘트 미장을 거쳐서 지금은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온실의 유지 관리를 위하여 각종 기계장치와 창호의 개폐 방식에서 당시의 첨단 공법이 도입되었다. 창경궁 대온실은 건립한 지 115년[2022년 기준]이 지났기에 많은 변화를 거쳤으며, 특히 한국전쟁 때에 큰 피해를 입었다.
1961년 보수공사에서는 창문의 한 틀에 지붕 유리창을 5열씩 배열하였던 것을 3열 배열로 바꾸었다. 난방 시스템은 지하실의 석탄 보일러를 썼었다가 좌우측 전실의 석유 온풍기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유리창들을 잘 부지하기 위하여 트러스와 주철 기둥, 목재 구조체의 결합에 심혈을 기울였고 백색의 세장한 부재를 사용하였던 것은 변함이 없다. 그 결과 정면 33m, 측면 14.65m, 높이 10.5m의 커다란 부피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날렵한 인상을 갖게 된다.
2013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실시한 '국가지정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에서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돼 2016년 8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1년 3개월 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창경궁 대온실은 주철과 목재로 구조체를 만들고 외피를 유리로 감싸서 만들었는데, 외벽 하단에는 화강석을 썼고 바닥에는 타일을 발랐다. 주철과 유리는 19세기 서양에서 건축의 새로운 구축을 가능하게 해준 재료들이었다.
19세기 중반 이래 널리 유행한 철과 유리로 지은 온실은, 그 내부에 열대 지역의 식물을 전시함으로써 전 세계로 뻗어나간 유럽 제국의 확장을 과시하는 근대적 시설이다.
창경궁 안에 온실을 설치한 것은 조선왕조의 궁궐을 지우고 제국주의 일본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창경궁 대온실은 근대 건축의 선진성과 제국주의 문화 침탈의 비극을 동시에 보여주는 역사적인 시설이다. 또한, 대한제국 말기에 도입된 서양 건축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4년 2월 6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