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삼옥리유적이 자리한 곳은 남한강 상류지역인 동강의 회절부 일대로서 주변에 잔구성 구릉이 발달되어 있는데, 비교적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침식분지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가르스트지형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측방퇴적으로 생성된 충적대지가 일부 형성되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무대로 이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자연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1995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의 영월군 문화유적 지표조사와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영월군 문화유적 분포지도 조사를 통해 알려졌으며, 2007년 (재)예맥문화재연구원의 영월온천 진입도로부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2007년~2008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영월동강 리조트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생활 관련 유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돌리네[Doline: 카르스트 지형에서 석회암이 물에 용식되어 생긴 원형 또는 타원형의 움푹 팬 땅]와 잔구성 구릉지, 바위그늘에서 주로 규암, 석영암, 편암 등으로 만든 몸돌 · 격지 · 주먹찌르개 · 찍개 · 여러면석기 · 망치돌 · 긁개 · 찌르개 등 530여점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삼옥리 구석기시대 유적은 석기 구성과 자연과학적 분석 결과를 미루어 볼 때 중기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바위그늘 2개소가 발견되었다. 1호 바위그늘은 단애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부의 공동(空洞) 규모가 높이 469㎝, 너비 1,548㎝, 깊이 364㎝ 정도로 입구 방향이 남동쪽을 향하고 있어 선사시대 주민들이 거주하기에 최적의 입지를 갖고 있다. 내부에서는 야외노지 3기가 발견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편과 토제 어망추, 뗀석기 및 간석기 등 소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호 바위그늘은 곡부 초입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부 규모는 너비 550㎝, 높이 450㎝, 깊이 380㎝ 정도이다. 입구방향이 남동쪽을 향하고 있으나 일조량이 적고 관망이 양호하지 못해 장기 거주처보다는 임시 거주처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석기 소량이 수습되었다. 또한 이들 바위그늘에서는 동물유체가 다수 발견되었는데, 어패류와 조류 · 포유류 등으로 확인되었다. 패류는 담수패류가 주를 이루나 해수패류도 소량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포유류는 소 · 사슴 · 돼지 · 개과 · 곰과의 동물 유체로 확인되었다. 조류는 닭 등의 꿩과로 확인되었다. 삼옥리 신석기시대 유적은 빗살무늬토기편의 문양 구성을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돌리네와 잔구성 구릉, 1호 바위그늘에서 주거지, 구상유구, 수혈유구 등이 발견되었다. 동쪽 구릉 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주거지는 주축방향이 남동-북서 방향으로 등고선과 직교하게 조성되었으며, 북동벽 일부가 유실되었다. 잔존 규모는 길이 400㎝, 너비 310㎝ 정도로,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깝다. 바닥은 경사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주거지 남동쪽에서 저장공 3기가 확인되었으며, 내부에 화강암제 할석을 바닥면에 인위적으로 안치한 흔적도 남아 있다. 민무늬토기[무문토기] · 숫돌[지석] · 삼각만입형 돌화살촉 · 돌칼[석검] 등이 출토되었다. 돌리네에서 확인된 수혈유구는 평면형태가 장타원형으로 규모는 200×90㎝ 정도이고, 수혈 바닥에 불을 맞아 소결된 갈색점토와 목탄이 충진되어 있고, 북동쪽으로 석회암제 판석제 5~6점이 집석되어 있는 구조이다. 내부 퇴적토에서 조개날모양의 돌도끼[석부] 1점이 출토되었다.
산사면 하단에 위치하고 있는 수혈유구는 총 10개가 발견되었다. 평면형태는 타원형과 원형이 주를 이루고 방형도 있다. 규모는 길이 100130㎝ 내외이다. 내부 퇴적층에서 점토대토기 · 반월형석도 · 원통형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서쪽 지점에 위치하는 구상유구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고 남서쪽 모서리가 돌출되어 지선상에 가깝게 약간 휘어진 구조로 동쪽 지점의 주거지를 둘러싸기 위해 시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상유구의 규모는 길이 2,870㎝, 너비 240300㎝, 깊이 3080㎝이다. 내부 바닥의 양쪽 벽면 가장자리에는 주공이 설치되었는데, 총 34개의 주공이 확인되었다. 내부에서 구멍무늬토기 · 삼각만입형석촉 · 일단경식석촉 · 석검편 · 석추 · 지석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고상가옥은 구릉 완사면에 총 5기가 'ㄴ'자형으로 배열되어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방형이고, 4개의 주공이 정면 1칸, 측면 1칸의 구조로 설치되었다. 규모는 길이 180280㎝, 너비 207~266㎝이다. 삼옥리 청동기시대 유적은 토기 및 석기 등 출토유물의 형식을 미루어 볼때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철기시대 유적은 강안의 충적대지에서 주거지 6기와 수혈유구 3기, 고상가옥 1기, 주혈군 2개소가 발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여(呂)자형(1 · 3 · 4 · 5호)과 방형(2 · 6호)으로 구별된다. 주거지 유구간 중복양상은 보이지 않고, 대략 67m의 간격을 두고 남-북의 선상으로 배치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1호 · 3호 · 4호 주거지의 큰방 면적은 대체로 3040㎡ 내외이며, 수혈의 깊이는 60㎝ 이상이다. 반면 5호 주거지는 큰방의 면적이 12.2㎡, 수혈의 깊이가 30㎝ 내외로 선행하는 단계의 주거지보다 소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주거지 내부시설은 바닥을 점토다짐한 것(1 · 3 · 4호)과 불다짐한 것(5 · 6호) 그리고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것(2호)으로 나눠진다. 노지[화덕자리]는 5호 주거지를 제외하고 모든 주거지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점토띠식노지와 평지식노지 각각 1기씩 시설되어 있는데 반해, 3호 주거지는 점토띠식노지 이외에 동벽의 북쪽에 'ㄱ'자형 구들과 무시설의 평지식노지 등 세 종류가 설치되어 있어 매우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일부 문지방시설이 확인되고 있고, 큰방과 연결되는 통로에 다수의 점토가 잔존하고 있으며, 통로부 벽면을 따라 판재목탄과 기둥재 목탄 그리고 주혈이 일부 확인되고 있는 양상을 볼 때 주거지 구조는 큰방에서 돌출된 형태의 출입구 통로와 관련된 수직벽체 시설과 출입문이 있었으며, 주거지의 출입을 용이하게 하는 계단상의 시설이나 주거지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문지방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주거지의 폐기양상은 불과 관련된 폐기양상과 주거지 해체 후 방기되어 자연 매몰된 양상으로 구분되나 모두 인위적인 해체과정을 거치면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중도식토기'로 불리는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 이외에 철도자 3점을 포함하여 철촉 · 철부 등 소량의 철기류가 있다. 삼옥리 철기시대 유적의 조성 연대는 주거지 형태 및 출토유물 양상 그리고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한 연대측정 자료를 참고하면, 대략 서기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후엽 사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시대 유적은 구들시설이 남아 있는 나말여초기의 주거지 8기와 내부에 집석시설을 갖춘 수혈유구, 소성유구가 각각 1기씩 조사되었다. 그리고 고려~조선시대의 매장유구인 돌덧널무덤 9기 및 움무덤 15기를 비롯하여 주거지 4기, 우물터, 구유구, 수혈유구, 밭경작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의 평면형태는 타원형 1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석회암제 판형석을 사용해 벽체를 쌓았고 납작한 강자갈돌을 시상석으로 깔아 매장주체부를 마련한 구조이다.
고려시대 움무덤은 기반층인 점토층을 굴광하여 조성하였으며, 장축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직교한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길이는 184~281cm 내외이다. 부장품은 대부분 발치쪽에 안치하였다. 이들 유구에서는 주름문병을 비롯해 시루 · 숫돌 · 대호 · 도자기류 · 청동제류 · 철기류 · 구슬류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움무덤에서 출토된 쌍용문 동경과 중국에서 유입된 각종 동전[개원통보 · 상부통보 · 천희통보 · 천성원보 · 황송통보 · 숭령통보 등]은 당시 피장자의 신분이나 사회적 위치를 알려주는 물증자료가 된다.
영월삼옥리유적은 남한강 최상류의 구석기시대 문화양상과 구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을 적절히 살펴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석회암지대의 돌리네 및 우발레의 생성과정이나 퇴적양상, 그리고 동굴의 생성과정까지 연계되는 고환경 연구 및 복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남한강 상류인 동강변에서 신석기시대 바위그늘이 처음 조사되어 영월지역의 여러 바위그늘이나 동굴유적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신석기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점,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취락 및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의미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점, 그리고 나말여초기 및 고려~조선시대에 걸친 각종 생활유구와 매장유구, 경작유구를 통해 당시 영월지역의 사회, 문화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고고유적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