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 있는 삼국시대 돌덧널무덤·구덩식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역사적 변천
내용
고분의 구조는 원형 봉토분으로 직경 21m, 높이 북 1m, 동서 3m, 남 5m로 남고북저의 구릉에 축조하였다. 중앙부에 주곽인 1호 돌방을 설치하고 개석을 덮은 후 그 위에 점토로 밀봉하고 다시 크기 20∼40㎝ 크기의 할석과 천석으로 50㎝ 정도 쌓았다. 봉토의 외곽은 묘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호석을 쌓아 돌렸고, 남쪽 호석에 연접하여 1호와 평행하게 2호 돌덧널을 축조하였다. 돌방의 구조는 장방형 판상식 석실로 길이 5.8m, 폭 1.3m, 높이 1.4m 로 석재는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으며, 개석은 길이 2m, 폭 1.5m, 두께 30㎝의 대판석 5매를 횡으로 덮고 개석사이의 틈은 할석으로 채웠다. 바닥은 점토로 다진 후 천석을 깔았다. 유물의 배치상태는 벽과 접한 석단 위에 짧은목항아리(단경호) 1점, 파수부배 1점, 띠고리(교구)가 있었다. 그 다음 자갈이 깔린 곳에 말갖춤(마구)류와 바리모양그릇받침(발형기대) · 통형기대 · 뚜껑없는 굽다리 접시(무개고배) · 적색연질옹 · 긴목항아리(장경호) 등이 놓여 있었으며, 중앙부에 피장자가 착장한 것으로 판단되는 큰칼(대도)와 철촉군이 있었다. 그 아래 남벽에 고배 10점이 2열로 놓여 있었으며, 서벽에 접하여 대옹 · 고배 · 긴목항아리 · 적색연질토기가 배치되었다.
의의와 평가
돌방의 형태는 대구의 비산동 37호분과 내당동 55호분(대구 내당동 고분군), 성주의 성산동 38호분과 58호분(성주 성산동 고분군)에서 확인되었다. 성산동 고분은 구덩식[竪穴式]으로 판명되었지만, 비산동과 약목 고분은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출토된 유물 중 토기류는 전체적으로 5세기 중엽경의 신라토기 양식이지만 낙동강 동안의 대구지역과는 차별성이 있고 성주지역과 양식을 공유하는 특색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낙동강 서안 문화권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약목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대옹총발굴』(경북대학교박물관, 1961)
- 「약목고분군」(『한국고고학전문사전: 고분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 「약목고분 발굴조사 재보고」(『경부고속철도 대구·경북권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경북대학교박물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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