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리당하산유적은 발굴 결과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철기시대 초기의 유적이 확인된 다층위(多層位) 유적이다. 유적은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장년리에 소재하며, 22∼26m 사이의 구릉상에 자리한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중기구석기시대 문화층은 일시적인 임시 거주에 의한 석기제작과 주거 양상을 보이며, 후기구석기문화층은 일시적인 점거과정에서 남긴 일부 유물만 발굴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 문화층은 언덕 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토기 문양의 다양성, 석기의 제작방법의 특징 등을 고려하면 신석기시대 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부석(敷石)유구는 청호리, 내평리 등에서 발견된 것들과 비교되는 바 부석주거지일 가능성이 높다. 토기의 문양은 다양하지만 토기 저부의 수가 적고 유구의 수도 많지 않을 뿐 더러 비탈 사면에 만들어진 노지,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간 것으로 추정되는 원형유구 등과 같은 양상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이 유적에서 그다지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유구와 토기에 비해 석기의 수량은 많았다. 특히 돌도끼와 굴지구(掘地具)의 수량이 많고 사용되어 마모된 석기들이 적지 않은 것은 목공행위나 간단한 밭작물재배 등 어떠한 경제행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철기시대 초기의 문화층에서는 토광묘, 옹관묘, 그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토광이 확인되었다. 특히 토광에 꽂혀 있는 세형동검의 의미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부장 토기들은 전남지방의 지석묘사회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연대는 서기전 1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독무덤은 총 3기가 확인되었는데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무른 토기를 이용한 합구식(合口式) 옹관이다. 동체부에는 우각형(牛角形)의 파수(把手)를 부착하고 저부는 축약되어 있어 신창동식으로 대표되는 옹관의 형태와 유사하다.
토광묘는 2기가 조사되었다. 함평지역에서 이른 시기의 토광묘에는 순촌, 만가촌, 용산리 유적 등이 분포하고 있으나 이들 유적보다 훨씬 앞서는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명됨으로써 그동안 공백기로 남아 있던 철기시대 초기의 토광묘 양상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기존 연구 결과 당시의 묘제로는 신창동식 옹관과 방형계의 주구(周溝)토광묘가 주로 채택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단독으로 조성된 소형 토광묘도 함께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중에 발굴조사된 함평 장년리 당하산유적은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구석기시대∼철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된 다층위 유적으로, 전남 서해안지역의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 초기에 이르는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의 점진적인 변천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