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하여 중국측 사서인 『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진서(晉書)』·『북사(北史)』 등에 등장하는 왜의 여왕으로 군주이면서 여사제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삼국지』 위서(魏書) 왜인전(倭人傳)에 의하면 2세기 후반 왜국에서 분쟁이 계속적으로 일어나자 왕으로 옹립되었는데 남편은 없고 남동생이 보좌했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귀도’(鬼道)를 사용해 정치를 행했다고 한다.
239년과 244년에 위나라에 사신을 보냈으며, 위나라로부터 친위왜왕(親魏倭王)이라는 봉호와 금인자수(金印紫綬), 동경(銅鏡) 100매를 하사받기도 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아달라왕 20년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예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비미호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었는데 지름이 100여 보이고 노비 100여 명을 순장했다고 한다.
비미호가 통치했다는 야마대국(邪馬臺国)의 위치에 대해서는 규슈 지역설과 긴키 지역설로 나뉘어 있다. 비미호의 실체에 대해서는 구마조 지역의 여성통치자로 보는 견해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실존 모델이었다는 설, 진구황후(神功皇后) 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