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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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개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유신이 경상북도 경주에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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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유신이 경상북도 경주에 창건한 사찰.
내용

신라 장군 김유신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뒤에 조상의 음덕을 빌기 위해 창건한 절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에서 김유신이 사망한 673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의 연혁이나 위치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에 의하면 779년(혜공왕 15) 4월 혜공왕은 김유신의 혼령이 미추왕릉으로 가서 자신의 자손이 무고하게 주살당했다며 신라를 떠나고자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대신(大臣) 김경신(金敬信)을 보내어 제사를 드려 사과하고, 취선사에 밭 30결(結)을 바쳐 김유신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취선사에서는 이 토지를 재원으로 공덕보를 설치, 운영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혜공왕대의 정치적변혁」(이기백, 『사회과학』 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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